[발행인 칼럼] 실세와 측근
[발행인 칼럼] 실세와 측근
  • 양삼운 발행인
  • 승인 2019.06.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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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삼운 발행인

초창기 어려운 시기에 가까이에서 동행한 이들은 측근이다. 부침을 거치는 동안 소수만 남으면 영향력이 집중되기도 한다. 힘이 없는 때는 드러나지 않지만 어떤 계기로 힘을 얻어가면 소수 측근이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고, 이 와중에 후발 참모들을 지휘해야 할 때가 많아진다. 실세로 불리기 시작한다.

경지에 오르면 서열이 정해진다. 좌와 우의 최측근부터 거리를 불문하고 실제 영향력이 작용하는 멘토와 전략가들이 늘어난다. 일부는 조직이 커지는데 적응하지 못해 불만이 쌓이고, 충돌이 생기면서 멀어지게 되고 측근 사이에도 분화가 생긴다. 계보로 발전하기도 한다.

보통의 조직들 문화가 이럴진대 정치인들의 꿈인 대통령 주변이야 오죽 하겠는가! 축구와 정치엔 대부분이 박사라는 대한민국에서야...

요즘 단연 화제의 인물이 양정철 원장이다. 더불어민주당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면서부터 뜨거운 뉴스를 만들어내고 있다. 과연 최측근답다.

"총선 병참기지"를 자임한 기구의 책임자로서 거침없는 행보가 개인의 위상을 증명할 수는 있으나 당의 외연을 넓히는 일에 적합한 행태인지는 잘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노무현재단 유시민 이사장이나 문재인 대통령의 비서실 최고참 수석인 조국 민정수석비서관에게 정치권 복귀와 총선 출마를 요청하는 거야 누구나 할 수 있는 말이지만, 상대방의 진의와 무관하게 공개발언하는 것은 당사자보다 본인을 위한 부주의한 얘기일 수도 있다. 더구나 한사코 싫다는 이들에게 공개주문은 압박일 수도 있다. 최측근임으로 주의해야 할 언행이다.

당은 총선이 임박할수록 인재영입에 나설 것이다. 격에 맞는 조직에서 정중히 모시면 될 일이다. 연구원은 정책평가와 개발에 전념하기도 바쁜 기구이다. 서훈 국정원장을 장시간 반공개적인 곳에서 만난 일도 칭찬받을 건 못된다. 그만한 주의력도 없이 무슨 큰 일을 도모하려는가. 7년전 "폐족"으로 자임할 정도의 멸문지화한 소수파가 아니다 지금은.

더구나 양극화와 공정경제를 염려하는 시기에 본인 밥값으로 15만원을 현금으로 냈다는게 그리도 떳떳한 일인가? 부동산 투기도 마다 않는 "강남좌파"에 격분하는 나라에서...

측근이 준동하면 어찌 되는지 촛불혁명으로 보여준 지 3년도 지나지 않았다. 지방자치제가 단체장을 선출하며 부활한지 24년이다. 자주적인 자치조직권과 재정권까지 먼 길을 가기 위해 문 대통령이 제출한 분권개헌안이 국회에서 제대로 토의도 못하고 잊혀져가는 실정이다. 1년전 동북아와 한반도 평화분위기까지 더해 힘겹게 운동장의 기울기를 조금 바로잡아가는 와중이다. 경제를 앞세운 수구파의 총력전에 밀려 혁명정권의 뿌리가 흔들리려는 엄혹한 시기이다.

연구원장으로서 지역 연구원장과 정책연구 협약을 맺는 건 좋은 일일 수도 있다. 차제에 2당, 3당 등 여야 불문하고 국고보조금을 받는  정당의 연구기구들과도 협력해 좋은 정책을 광범위한 지지와 성원으로 실현하게 도울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본연의 역할을 넘어 광역자치단체장들을 순차적으로 만나는 건 월권이고 권력남용이다. 제2국무회의를 만들겠다는 대통령의 의지를 볼 때도 시도지사들은 장관급 예우로 국회의 상임위원장급이나 원내대표, 당대표들이 만나야 어울리는 고위 선출직들로, 일정이 정말 바쁜 사람들이다.

정무적 역할은 선량들에게 맡겨두고, 임명직 연구원장 직무에 충실하기 바란다. 소득주도 성장이나 최저임금제, 52시간 근로시간제를 비롯해 정권의 명운이 걸린 정책들에 대한 평가와 세밀한 대안 모색에 여념이 있을 수 없다. 한가하게 사적인 귀국인사로 "접견 전문" 원장에 그칠 여유가 없다. 당과 정부에 부담을 주는 요란한 수레같은 행차보다는, 해외체류와 사색으로 한층 깊어진 '양 비'의 격조있는 정책역량을 기대해본다.

지탄받는 최측근보다야 정권과 나라는 물론 겨레와 인류에 큰 기여를 하는 진정한 "실세"임을 정책연구원장으로서도 입증해주길 기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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