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효 칼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자 처벌이 우선이다
[안수효 칼럼] 가습기 살균제 참사, 책임자 처벌이 우선이다
  • 안수효 논설위원
  • 승인 2019.06.19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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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효 논설위원(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안전전문가)

GDP 규모에서는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일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화학참사가 일어 난지 10여년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사고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아직도 요원한 실정이다.

최근 검찰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재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 유해성 자료를 은폐한 혐의로 박철 SK케미칼 부사장 등 임원들과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가 구속한 데 이어 이마트 전·현직 임직원들의 구속 또는 불구속 기소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사망자 502명, 1993년 위도 서해 훼리호 사망자 292명, 2014년 세월호 사망자 276명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의 사망자는 세월호 사건 실종 사망자의 5배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가습기넷에 따르면 2019년 2월22일 기준으로 피해자들은 52명 더 늘어 6,298명으로 집계됐고, 사망자는 11명이 증가해 1,386명이 됐다. 단일 사건으로 사망자 수가 1,386명이라는 엄청난 참사가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관심은 크지가 않다. 다른 사고는 일시에 일어난 경우이고, 가습기 살균제 참사는 10여년에 걸쳐 천천히 쌓이다 보니 이렇게 대규모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과거 한 달에 1~2명씩 발생했던 정체불명의 폐 질환 환자가 2011년 5월부터 대량으로 발생하였고, 환자들의 공통점으로 가습기 살균제 사용이 꼽혔으며 후에 대한민국 환경부에 의해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폐 질환으로 밝혀졌다.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발표한 ‘2018년 교통사고 통계’에 따르면 지난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는 3,781명이었다는 발표와 가습기 살균제 사망자수를 비교하면, 어느정도 심각성을 가지는지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1,386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기 까지 SK 케미칼, 옥시가 그랬듯, 가해 기업들과 법률대리인 김앤장 등에는 증거를 인멸하거나 조작하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 주어진 반면 피해자들은 아직도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피해자들이 원통해 하는 것은 모든 가습기 살균제의 원료 물질을 만들어 유통한 SK케미칼에는 정부와 검찰이 칼날 한 번 제대로 휘두르지 않았다는데 있다. 대한민국 수립이후 전쟁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희생된 적은 없었다. 문제는 피해자가 수 천명에 달하는데 가해자는 아직 없다.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와는 달리 2015년 10월 가습기 살균제 피해 실태와 정부 대응을 살피고 간 툰작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유해물질 특별보고관이 지난 2월28일 한국 정부에 서한을 보냈다. 그는 2016년 9월 제33차 유엔 인권이사회에 발표한 보고서에서도 밝힌 바와 같이 “유해물질이 담긴 가습기 살균제 제조 판매사들에 대한 적절한 시정조치가 없다면 같은 사고가 또 발생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엔기구 조차 살균제 참사를 두고 조치를 촉구하는 마당에 정부는 아직도 뭉그적거리고 있다.

SK 케미칼은 자사의 가습기 살균제 원료가 영국에서 독성 시험을 거쳐 안전하다는 광고까지 했다. 이걸 믿고 구매한 제품이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독성을 함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SK 케미칼의 도덕성은 이미 땅에 떨어졌다. 영국의 독성 시험에서 안전하다고 나온 것은 PHMG라는 물질인데, 실제 가습기 살균제로 만든 원료는 CMIT-MIT로 밝혀졌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CMIT-MIT에 대해서는 이미 독성 보고서가 있었다. SK 케미칼은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기 몇 해 전에 스스로 독성 검사를 해놓고도 그 보고서를 분실했다고 거짓말 까지 했다.

피해자들이 분노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SK 케미칼은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특정 물질로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었고, 독성시험 물질과 가습기살균제에 들어간 물질이 달랐음에도 국민들을 속인 것이다.

원인 없는 사고는 있을 수 없다.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지만, 10년이 지난 이제야 본격적인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니 말이다.

철저한 진상규명 없이는 재발 방지 대책이 있을 수 없다. 아이의 건강을 위해 부모가 구입한 가습기 살균제가 아이를 죽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시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단순한 화학물질 사고가 아니다. 사고의 근원은 영업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제품 안전을 무시한 기업과 제품 안전 관리를 방조한 정부의 무책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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