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효 칼럼] 정의의 여신은 존재하는가?
[안수효 칼럼] 정의의 여신은 존재하는가?
  • 안수효 논설위원
  • 승인 2019.11.13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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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효 논설위원(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안전전문가 )
안수효 논설위원(가천대학교 사회정책대학원 안전전문가 )

정의 (혹은 법)의 여신은 오른쪽엔 칼을, 왼쪽엔 저울을 들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저울이 가져다주는 사람들의 인식을 정확하게 표현한 것이 바로 공평함이다. 대화로 풀수 없는 수없이 많은 갈등을 한 쪽에 치우침 없이 하겠다는 것이 바로 법원의 엠블렘이다. 한쪽에는 달 물건을, 다른 한쪽에는 추를 놓아서 평평하게 함으로써 물건의 무게를 다는 저울은 누구에게도 기울어지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희랍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Dike)는 질서와 계율의 상징인 테미스(Themis)의 딸이다. 이해의 조정과 재판의 평결을 주관하는 디케는 그 상징이 ‘저울’이다.

디케는 한손에 저울을 들어 치우지는 않는 옳고 그름의 무게를 재고, 다른 한손에는 누구라도 심판하는 칼 자루를 들고 불의에 눈 감지 않고 엄격하게 처벌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이러한 의지는 사람들이 법을 지키고 판결을 따르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가끔 사진을 보면 디케는 두 눈을 가린 상을 볼 수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인문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던 1494년 바보배라는 책을 쓴 제바스타안 브란트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세계 100명의 바보 중 한명에게 두 눈을 가려지게 한다고 한다. 그 이유는 크고 작은 소송이 끊이지 않았던 당시, 소송에서 이기고자 했던 사람들은 눈먼 정의를 바랬던 것이다. 정의가 눈이 멀었다면 판결은 공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발장 하면 빵 한 조각 훔치고 19년 옥살이한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례1) 편의점에서 단돈 2천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60대에게 징역 4개월의 실형이 선고됐다. 절도 금액과 물품 내역에 비해 지나친 처벌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구지법은 편의점에서 컵라면 등 2천원 상당의 물품을 훔친 혐의(절도)로 재판에 넘겨진 A(61) 씨에게 지난 7월 징역 4개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사례2) 17년 4월, 라면 20여개를 훔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에게 대전지방법원은 이모(28)씨에게 징역 10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누범 기간 중임에도 자숙하지 않고 이 범죄를 저질렀다”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은 후 종적을 감춘 점 등을 참작했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사례3) 영업이 끝난 분식집에서 몰래 라면 2개를 끓여 먹은 뒤, 라면 10개와 2만원이 든 동전통을 훔쳐 나온 김모씨(39)는 징역 3년6월을 선고받았다.

다들 이러한 뉴스를 접하고 난 뒤, 한 목소리가 너무 가혹한 판결이 아니냐고 한다. 이들에게는 형법 대신 특정범죄가중처벌법 5조 4항의 상습절도죄가 적용됐기 때문이다. 일명 ‘특가법’이라고 불리는 법 때문이다.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을 줄여서 ‘특가법’이라 부른다. 이 법에 처벌을 과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 있고, 이미 이 법의 여러 조항들이 ‘형벌 체계상의 정당성과 균형성을 상실했다’라는 이유로 헌법에 어긋나서 위헌 결정을 받은 적도 있다.

​이 조항은 상습적으로 절도를 한 경우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또 두 번 이상 이 법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으면 같은 조의 6항에 따라 법정형이 최소 6년이 된다. 일부에서는 이법을 ‘한국의 장발장 법’이라 부르기도 한다.

수 십억원의치의 마약을 몰래 들여오다 적발되어도 전 국회의원 자녀라서 불구속, 마약을 해도 재벌가라서 불구속, 수차례는 고사하고 상습적으로 마약을 복용하고 구속 전력이 있는 사람도 전직 대통령 자식이라고 불구속하는 사례를 수 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다른 나라는 모르겠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분명 두 눈을 가리고 있다고 믿는다.

법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한다면 법은 사형선고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70억대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기소된 고 유병언 전 회장의 장남 유대균 씨에게 징역 3년이 선고된 것과 분식집에서 라면 10개 사람에게는 징역 3년 6개월이 선고 것을 공정하다 말하겠는가.

아무리 법률로 규정되어 있지만 지은 죄에 비해 형량이 너무 가혹하다는 지적은 계속되고 있다. 공직자나 기업인들의 각종 비리나 정치인들의 선거법 위반 등에는 집행유예나 벌금형에 그치면서 특가법을 적용받고 있는 일부 피의자는 상대적으로 너무 무겁다고 판단하는 국민이 많아질수록 사회정의는 고사하고 가장 공정해야 할 법원의 판결도 불신하게 되는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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