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하룡 칼럼] 포스트 코로나, "흩어져야 산다"
[정하룡 칼럼] 포스트 코로나, "흩어져야 산다"
  • 정하룡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5.20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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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뭉쳐서 살았지만, 여하튼 '흩어져야 산다'. 살고 싶으면 흩어져라...
제목: 희망작품: 90.9*65.1 mixed Acrylic  작가: 윤수미작품설명: 하늘아래 따뜻한 도심 옹기종기모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그곳은 하늘과 산 집들의 향연으로 사람이 모여 희망을 노래할듯하다.해질녘 어둑어둑한 도시의모습을 따뜻한 색으로 입혔으며하늘과 산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으로 부산 어느산복도로마을을 보고 그려보았습니다.
제목: 희망작품: 90.9*65.1 mixed Acrylic 작가: 윤수미작품설명: 하늘아래 따뜻한 도심 옹기종기모여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곳.그곳은 하늘과 산 집들의 향연으로 사람이 모여 희망을 노래할듯하다.해질녘 어둑어둑한 도시의모습을 따뜻한 색으로 입혔으며하늘과 산으로부터 보호받는 느낌으로 부산 어느 산복도로 마을을 보고 그려보았습니다.

'뭉쳐야 산다'던 때가 있었다. 살면서 우리는 '덩어리의 시간'을 경험한다. 하지만 죽음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우리는 모든 크고작은 덩이의 시간과 장소, 방법을 조금은 선택할 수 있다. 싫든 좋든 떠나야 할 때가 되면 떠나야 한다. 삶이란 유동하는 것이고, 바람처럼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므로…

근대화

멀리 갈 것도 없이 200여 년 전의 세계. 1792년 영국 매카트니 백작은 무역 사절단을 이끌고 청나라 건륭제를 만난다. 하지만 백작에게 돌아온 대답은 "외국 야만인의 물품은 필요 없다"는 거였다.

인간 욕망의 회로는 단순하다. '대화'가 막히면 '폭력'이다.

당대 조선이 '소중화냐, 개화냐'의 선택지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을 때, 일본제국주의자들은 강제적으로 조선을 야수처럼 먹어치웠다. 세계 열강들은 아편전쟁으로 '홍콩 150년'을, 청일전쟁으로 '조선의 반세기'를 짐승처럼 먹어치웠다.

제국의 '산업혁명'이라는 신식新式무기는 약소 식민지 인민들의 삶과 생활시스템, 생각까지 제국의 방식으로 개조됐다. 인간은 노예와 주인으로 나뉜다. 아니 노예는 인간이 아니다.

그 견딤의 시간들이 제국주의다, 식민지다, 민족이다, 조국이다, 자주독립이다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기억된다. 이 모든 기억들은 '근대화'로 압축될 수 있고, 근대화는 산업혁명의 시기 조선의 일제식민지화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에 대한 응전 방식이 '뭉쳐야 산다'는 거였다. 조선의 자주독립을 위하여, 민족해방과 통일을 위하여... 덩어리로 뭉쳐야만 됐던 시대가 있었다.

산업화

가까운 어제는 쉽게 기억된다. 세계시민은 1,2차 전쟁으로, 조선은 '어쩌다 해방'과 '6.25전쟁', '남북분단'으로 삶을 파괴당했다.

인간 참 이해 못할 존재다. 제 무덤 제가 판다 했던가. 야차처럼 파괴하고 억측같이 다시 세운다. 주체가 누구든 파괴했으니 건설해야만 한다.

'새벽종이 울렸다. 모두 함께 뭉쳐 죽도록 일하자~' 새마을운동이 시작됐고 농촌은 해체됐다. 산업화 시대의 사람들 또한 한 덩어리로 돌아다녔고, 덩어리를 떠나면 죽는 줄 알았다. 농촌을 떠나 도시로, 공장으로 모여들었고, 사람들은 생산성 향상, 노동력 집중을 위해 고층 아파트로 차곡차곡 쟁여졌다.
 
한반도 남쪽의 삶은 집체와 집단으로, 교복과 군복으로, 흰색 아니면 검은색으로 재편됐다. 영화 '국제시장'엔 우리의 산업화의 삶이 농축돼 들어있다. 독일 간호사, 월남 파병, 사우디 건설인력... '피를 팔아 빵을 샀다' 그리고 독재 독점 독선 재벌 군대 일사불란 상명하복 집중 집적 무한증식 비교경쟁 거대자본 세계금융... 보다 높이 보다 빠르게 보다 많이...이 모든 명칭들 또한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한 덩이가 됐다.
 
모든 삶의 시스템이 '뭉쳐야 산다'는 방식으로 작동됐다. 드디어 '뭉쳐야 산다'는 시대정신이 됐다.

민주화

너무 많이, 너무 오래 뭉쳐서 일까? 사람의 피는 진득해졌고, 어혈로 심장의 뜀박질을 위협했다. 산업혁명으로 물자는 넘쳐났고 인간은 뚱뚱해졌다. 배 고파 죽는 사람보다 배 터져 죽는 사람이 많아졌다.

하여 사람들은 '뭉쳐야 산다'는 것에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모이면, 합쳐지면, 세계의 노동자들이 단결하면, 뭉치면 잘 살 줄 알았다. 온전한 행복은 우리를 비껴 갔다. 총소득과 행복지수는 비례하지 않았다. 주 5일제와 노동시간 단축은 사람들을 '어이없는 워커홀릭'으로 밀어넣었다. 잉여노동은 불금으로, 쇼핑으로, 여행으로 더 과격한 에너지를 발산했다.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 같은 가치는 완전히 분리되었다. 뭉쳐야 산다는 기존 삶의 방식은 바스락바스락 부서지기 시작했다.

나눠가지면, 좀더 공평해지지 않을까. 사람들은 저항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또 30년의 시간이 흘렀고, 민주화라고 불렀다.

그러나 1980년대를 통과하면서 품었던 역사와 혁명의 비전에 대해 많은 상념을 불러 일으켰다. 내탓이 아니라고 상대를 비방하고 흠집내기를 하는 동안, 그 저항의 진정성까지 휘발해버린 사태가 벌어졌다. 목욕물을 버렸는데 아기까지 버려버렸다.

왜 사람들은 독재자에 저항하면서 독재자를 닮아가는 것일까? 왜 열정의 진정성은 훼손되고 변질되는 것일까? 직업과 학문, 예술에 걸었던 열정도, 나라와 겨레 혹은 어떤 이상을 위해 뭉쳤던 뜨거운 순간들도, 사회적 이슈에 몸과 마음이 아플 정도로 헌신했던 터질 것 같은 순간들도…

혁명의 파토스, 그 순간이 뜨거웠을수록 회환과 이별의 고통은 크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런 순간들을 뒤로 하고 헤어져야 할 때가 온다. 어쩔 수 없이.

공공화共公和

세기말. 뉴밀라니엄. 새 시대가 도둑처럼 왔다. 아담 스미스도, 마르크스도 예상하지 못한 디지털혁명 시대다. 산업혁명 시대는 끝났다. 1997. 2008... 우리의 '세월호'는 시대정신이 됐다. '뭉쳐야 산다'던 시대가 '함몰陷沒'하기 시작했다. 함몰! 종전의 내비게이션은 졸지에 무용지물이 됐다.

변화의 패턴은 종전과 전혀 다른 색깔로 다가왔다. 성과 축적 계승 발전이라는 변증법적 진보란 없다. 어느날 문득,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변화는 종전의 차원과 다르다. 영화 '인터스텔라'가 현대를 상징하는 바 크다. 진보란 변증법적 변화가 아니라 차원을 달리하는 것.

공공화共公和란 필자가 처음 사용하는 개념이라 생소하겠다. 기회가 있으면 '공공화'의 뜻을 밝히겠지만 '흩어져야 산다'는 대략의 추세는 기억했으면 좋겠다.

숱한 시대적 아우성들... 증세와 복지, 빈부격차, 불평등, 일자리와 임금, 성차별과 인구절벽, 갑을관계 등등. 이 모든 '뭉쳐야 산다'는 삶의 패턴은 '증식'이, 증식의 큰 형 무한증식이는 '증여'로 흩어질 것이다. 생명과 주권이 다시 설 것이며, 계급투쟁에서 세대갈등으로, '소유'는 '자유'로,  '신도시'는 '원도심'으로, 농수축산업은 스마트화되고, 기존의 대규모 공장제 산업형태는 강점과 수월성 분야를 중심으로 빠르게 디지털화될 것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위한 아파트형 주거양식도 다품종 소량생산의 사회공동체적 양식으로 흩어질 것이다.

올해 2020년의 정치 영역 또한 그럴 것이다. 소국과민少國寡民. 이해관계가 다르고 꾀하는 바가 다르면 정치집단의 이합집산이야 당연한 것이다. 중앙집중식 제왕적 권력의 대통령제도 다당제와 지방분권적 양상으로, 정치인들이 처음 당을 만들었을 때의 역사적 소명감이나 명분, 기대, 서로 손을 마주잡고 부풀어 오르던 일체감의 순간들을 자주 만날 수 있는, 기쁨의 정치로 흩어질 것이다.

일본제국주의가 이식시킨 '검찰제도'는 해방 후, 한번도 변한 적이 없다. 그냥 두면 세월호처럼 침몰한다. 흩어져야 산다. 검찰은 욕심내지 마라. 더 가지려 말고 더 지키려 말라. 지금까지 누린 것만으로 감사하라. 4월 총선이 끝나면 '개헌'을 논의할 것이다. 그때면 늦다. 소탐대실…

2020년 새해의 아침이다.

우리 사회엔 자신의 시대가 지나갔는데도 망녕된 발언이나 거취에 무분별함을 보이는 인사들이 더러 있다. 한 때 빛나던 사람들이다. 또 그때 빛나던 사람들이다. 매사가 그렇듯이 사람에게도 유효기간이 있다. 세월에 장사 없다. 시대에 대한 겸손함, 염치와 예의를 차리는 선진들이 그리워지는 시절이다. 

어쩌다 뭉쳐서 살았지만, 여하튼 '흩어져야 산다'. 살고 싶으면 흩어져라.

흩어져야 산다는, 이제 '시대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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