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효 칼럼] 계란 18개의 '코리안 장발장'
[안수효 칼럼] 계란 18개의 '코리안 장발장'
  • 안수효 논설위원
  • 승인 2020.08.18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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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효 논설위원(안전전문가)
안수효 논설위원(안전전문가)

일상적으로 평범한 사람에게는 단돈 5천원이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굶주리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양심은 물론이고 중형에 달하는 실형을 선고받을 수 있는 금액이기도 하다.

지난 3월 23일 새벽, 경기도 수원의 한 고시원 건물에 한 남성이 불편한 걸음으로 올라가서, 고시원의 입구에 놓인 18개가 담겨져 있는 계란 한 판을 챙겨 도망을 갔다. 이 계란은 고시원에서 하나에 300원씩 팔던 구운 계란 이었다.

구운 계란을 훔친 40대 남성은 CCTV를 통해서 일주일 만에 붙잡혔다. 범인의 지나온 과거가 언론에 소개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가슴을 쳤다. 검찰이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한 건 범죄 전력 탓이다. 부모의 학대로 16살에 가출해 30년을 떠돌아다닌 사람. 생계가 막막해질 때마다 고물상과 건설 현장에서 물건을 훔쳐 팔았다. 훔친 물건은 1만5000원짜리 손수레와 7만7000원 상당의 동파이프, 30만 원가량의 구리 전선과 185만 원짜리 중고 냉장고 등 다양했다.

이 40대 남성은 아홉 번에 걸쳐 700여만 원어치를 훔친 걸로 파악되었고, 모두 13년을 감옥에 있었다. 2017년 출소 직후엔 무보험 차량에 치여 장애를 얻었고 보상금도 못 받자 보이스피싱 조직에 자신의 통장을 팔았다. 이 범죄로 징역 1년을 또 선고받았다. 이후 코로나로 일자리를 잃자 다시 범행을 저질렀다.

2주일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하자 이 남성은 허기진 나머지 구운 계란 18개, 5천 원어치를 훔친 결과 다시 재판에 넘겨졌다. 3일 굶으면 남의 집 담 넘어간다는 속담도 있는데 2주 동안 곡기를 구경 못했다니 얼마나 배가 곱았을까?

범행 일주일 만에 경찰에 붙잡힌 이 남성은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다'고 경찰에 말했다고 한다. 담당 형사가 시켜준 짬뽕 한 그릇이 2주 만에 하는 첫 식사였다. 이쯤 되면 참으로 기구한 인생이라고 너나 할 것 없이 한마디씩 훈수를 둔다. 동사무소에서는 그동안 뭘 했으며, 복지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사고가 터질 때 나 언론에 도배를 하다시피 했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히 존재 했다. 주거가 확실하지 않는 이씨 같은 경우, 도움의 손길을 스스로 요청하지 않는 한 지원이 불가능한 시스템이다.

경찰은 새벽에 고시원에 들어가 구운 달걀을 훔친 이모씨를 야간침입절도죄로 검찰에 넘겼다. 9번의 절도 전과로 인해, 검찰의 판단은 달랐다. 구운 계란은 이씨가 전에 훔친 물건들과 달랐고, 습관적인 절도라면서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절도를 적용한 것이다. 2주일을 굶어 저지른 범죄에 법은 인정을 베풀지 않았고, 검찰은 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형법상 야간주거침입 절도죄의 최소 형량은 징역 1개월. 그런데 특가법의 최소 형량은 판사가 아무리 줄여도 12개월이다. 특가법이 일명 '장발장법'으로 불리는 이유이다.

법은 '동종 전과'가 있거나 '상습적'으로 범죄를 저지른다고 판단하면 가중처벌을 한다. 특가법 제5조4(상습 강도·절도죄 등의 가중처벌)에 따른 것이다.

특가법 제5조4의 제5항1호는 '세 번 이상 절도 혐의로 징역형을 산 사람이, 또 다시 절도를 저지를 경우 '2년 이상 2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한다. 제5조4의 제6항은 '상습 절도로 두 번 이상 실형을 선고 받은 사람이 3년 이내에 다시 상습 절도를 저지를 경우 3년 이상 2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생계형 범죄는 형법을 적용하거나 기소유예를 선택하는 방법도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다.

이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검사의 재량에 따른 특가법 적용은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대검찰청도 생계형 절도범에게 특가법 대신 형법을 적용하란 지침을 내렸다. 하지만 법은 마지막으로 기댈 언덕이 되어야 하나 세상은 벼랑 끝이 되고 있다.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이들에게는 법은 푸줏간의 저울처럼 정확한 형량이 되어 돌아온다.

왜 수 십 조원의 회계사기보다 동종 전과자가 저지른 구운 계란 한판의 절도죄가 더 나쁘고 엄하게 처벌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법이 아니라 돈이 야속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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