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상농청장원놀이, 풍년을 바라며 ‘얼쑤’
웅상농청장원놀이, 풍년을 바라며 ‘얼쑤’
  • 천소영 기자
  • 승인 2018.04.29 14: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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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상 고유의 농업민속놀이
풍년을 기원하는 농경의례
농부들의 삶과 얼 담겨있어
웅상농청장원놀이.
웅상농청장원놀이.

모내기철이 되면 웅상에서는 흥겨운 노랫가락이 울려 퍼진다.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아 줄 맞춰 모를 심고, 힘든 농사일을 잊기 위해 모내기 노래를 부른다. 풍년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제를 올리기도 하고, 농청의 새 일꾼이 바위를 들어 힘을 보여주기도 한다. 열심히 땀 흘려 일한 뒤에는 삼삼오오 모여 참을 먹는다.

이렇듯 정겨운 풍경은 전통 민속놀이인 ‘웅상농청장원놀이’의 한 모습이다. 농청놀이는 양산시 명동 농청에서 일 년 중 봄부터 가을까지 행하던 농가의 농사일을 농경의례와 민속놀이 중심으로 구성해 재현해 낸 놀이다. 웅상읍 명곡리에서 이어져 오며 마을 농사꾼들이 공동으로 농사일을 마치고 마을에서 농사가 제일 잘 된 집을 장원가로 선정하면 그 장원가가 낸 술과 음식의 장원턱을 나눠 먹으며 며칠 동안 한 해 농사의 힘겨움을 풀고 풍년을 구가한다는 내용을 상황의 순서와 동작에 따라 소리를 곁들여 입체화한 놀이다. 힘겨운 농사일을 마을 공동으로 해내는 작업과정과 당시 농경의례를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동남단이 위치한 웅상읍은 삼한시대에는 우산국, 신라시대에는 삽량주에 속했다. 회야강 상류 유역의 풍부한 물 자원과 넓게 형성된 비옥한 땅으로 삼한시대부터 이미 농경생활이 시작됐다고 한다. 이 놀이의 주 전승지인 명곡마을 뒤편에서 거대한 고분이 발견됐는데 그 곳에서 출토된 토기 파편으로 볼 때 A.D 5~6세기를 전후해 마을이 생기고 집단 거주가 이뤄졌음을 추정할 수 있다.

농경사회가 발달하면서 경작지가 확대되고 이에 따라 가족 단위 노동에서 마을 단위 협업 노동이 필요하게 됐다. 사람들은 집단노동의 효율적 관리를 위해 ‘농청’이라는 마을 단위 조직체를 만들었다. 농청의 구성원은 노동력을 가진 성인 남자로 이뤄지는데 각 농가마다 남자가 한 명씩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한다. 농청의 구성원은 좌상, 행수, 수총각, 령각수, 방목감독, 보감독이 있으며 민주적 방식으로 선출해 운영됐다.

좌상은 농청의 고문역으로 마을에서 가장 신망 받는 어른이 맡고, 행수는 농청의 대표자 역할을 한다. 들임사는 들의 모든 일을 농청원에 알리는 역할이라는 뜻이다. 영각을 불어 농사일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영각수 일을 겸한다. 수총각은 공동 작업을 통솔하고 진행하는 일을 맡으며 마을에서 가장 유능한 농사꾼으로 대개 나이가 들도록 장가를 못간 총각이 맡는다. 방목감독은 가축의 방목을 감시하고 감독하며 가축이 남의 집 농작물에 피해를 줬을 때 손해배상을 조정하고 판결하는 일을 한다. 보감독은 보의 보수 및 농업용수의 분재에 관한 일을 주관한다.

옛 기록에 따르면 농청의 규율은 매우 엄격했다. 소임자들의 지시에 불복할 수 없는 것이 불문율로 여겨져 왔다. 만약 농청원이 규율을 지키지 않을 때는 곤장으로 다스리거나 심할 경우 마을에서 추방했다. 심지어 관원이라 하더라도 이곳 농청을 지날 때는 말에서 내려 농청원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해야 했다. 관원이 무례를 범해 봉변을 당해도 관가에서 농청원을 벌하는 예가 거의 없을 정도니 농청의 권위가 꽤나 컸음을 알 수 있다.

농청원들의 농사 과정을 논농사 중심으로 살펴보면 보리타작과 모심기가 거의 동시에 이뤄졌다. 아시(초벌)논매기, 두벌논매기 사이의 음력 6월 초순에 하루 휴일을 정해 ‘나다리먹기(다른 지역의 세사연과 유사한 행사)’를 행한다. 이 날은 당산을 깨끗이 청소하고 농청원들이 모두 모여 생장기 의례인 농신제를 먼저 올린다. 그 다음 좌상이 회의를 주관해 행수, 들임사, 방목감독 등의 농청 간부를 선출하고 농청원들의 논매기 공동 작업 순서, 가축의 방목 방법 등을 결정한다. 특히 16~17세에 이르는 청소년 중 평소 들돌들기와 농사일에 어느 정도 익숙한 자를 골라 새 품앗이꾼으로 인정하는 ‘주먹돋음’을 한다. 이것은 농청원의 입문례로 온전한 장정으로 인정받은 자는 술 한 동이와 안주를 마련해 농청원들에게 대접하는 예를 갖춘다. 이때 타지에서 이사 온 사람들도 술과 안주를 내어 농청 가입을 허락받는다.

농청에서는 원래 모심기, 논매기, 길쌈 같은 여러 사람이 함께 하면 능률이 오르는 일을 골라 협업 작업을 했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며 대부분 품앗이로 일하게 돼 망시논매기만 농청에서 협동사업으로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망시논매기를 해보면 그 농가의 풍흉작을 가늠할 수 있는데, 이때 일부러 농사가 잘 된 대농의 논을 맨 뒤로 미뤘다가 망시논매기를 한다. 망시논매기가 끝나면 그 집의 상머슴을 소 또는 목마에 태워 영각을 불고 풍물을 치며 주인집으로 간다. 주인은 술과 안주로 농군들을 대접한다. 이것을 온 동네 사람들이 나누어 먹으며 며칠 동안 연이어 한해 농사일의 힘겨움을 풀고 풍년을 바라는 의례를 갖는다.

이러한 농청의 공동 작업과 의례는 산업 기술의 발달에 따라 점차 사라졌으며, 농청 조직은 보의 공동 관리, 농업용수의 배분 같은 기능을 위해 1960년대 초반까지 그 명맥이 이어져오다가 새마을 운동으로 완전히 없어지고 근대적 마을 조직으로 흡수·통합됐다. 그러나 최근 웅상 지역이 공장용지, 택지용지 조성으로 급속히 도시화되며 노인들이 일손을 놓고 경로당에 모여 농요를 부르며 소일하는 현장이 나타났다. 마을 어르신들이 스스로 즐기고 후대에 남기고자 하는 뜻이 모여 60~80대 주축으로 농청원의 공동 작업과 농경의례가 놀이화된 ‘웅상농청장원놀이’가 탄생했다.

순서는 농부들 입장, 논매기 놀이 노래, 품평회, 지신밟기, 쾌지나 칭칭소리 순으로 진행된다. 우선 남정네들이 모를 심을 논에서 거둬들인 보리를 타작하는 노리깨질을 하며 보리타작소리를 선·후창으로 부른다. 그와 동시에 마을 아낙네들은 구성지게 모찌는 소리를 하며 모를 찐다. 이어 교환창으로 모심기 소리를 부르며 줄모를 심는다. 그러는 사이 남정네들은 타작한 보리를 소로 옮기고 써레질을 한다. 그런 다음 당산을 깨끗이 청소하고 ‘나다리먹기’를 하는데, 이때 제물을 차리고 농청의 임원들이 당산신(堂山神)에게 풍년을 기원하는 농신제를 올린다. 또 좌상을 중심으로 농청회의를 열어 행수, 들임사, 방목감독, 보감독, 수총각 등 소임을 선출하고 청소년 중에서 품앗이꾼으로 인정하는 들돌들기(주먹돋움)를 행하며, 외지에서 이사 온 사람도 신입 농청원으로 가입하는 절차를 거친다. 농청원들은 품앗이꾼 입문자와 신입 농청원들이 준비한 술과 안주를 나누어 마시며 흥겹게 논다.

이어서 소서 후 첫 용날[辰日]에 각 농가에서 아낙네들이 밀떡이나 수수떡을 논에 이고 가서 겨릅(삼대)에 꽂아 물꼬에 세우고 두 손을 비비며 풍재(風災), 수재(水災), 충재(蟲災)를 막아 풍년이 들게 해달라고 간절히 비는 용신제(龍神祭)를 올린다. 그러고 나서 남정네들이 모를 심어놓은 논으로 가 망시논매기를 하며 논매기 소리를 부른다.

망시논매기를 마지막에 마친 농가를 장원농가로 선정하고 그 농가의 상머슴을 소에 태워 주인집 대문 앞으로 가서 지신밟기 형태의 문굿을 하면 주인은 농청원들을 반갑게 집안으로 안내한다. 마당에서 마당밟기와 술귀풀이를 하며 마지막 칭칭풀이로 신명을 푼다.

웅상 농청놀이의 특징은 마을 어르신들이 주축이 돼 재현되는 전통놀이인만큼 노인들이 직접 참여해 놀이가 소박하나 짜임새가 있고 소리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한다. 또 되도록 원형에 가깝게 재현해 내는 방식으로 놀이화 해 전승계보가 명확하다. 이 놀이에 참가하는 구성원은 모두 명동마을 주민들로만 구성된다. 특히 소싯적 직접 농청원이었던 사람과 한평생 농사일을 해온 어르신들로 이뤄져 호흡이 잘 맞고 놀이 진행과정이 자율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풍물꾼과 품앗이꾼 입문자를 제외하면 이 놀이의 순수 경험자들로만 구성돼 놀이 과정의 작업, 의례, 놀이 등 모든 행위동작이 실경험자의 몸에 배인 것으로 놀이가 아주 자연스럽다. 놀이꾼들은 정리된 장단과 가락의 영향을 받지 않고 순수한 경상도 매나리조의 민요를 부른다. 특히 ‘오하 저리여’라고 뒷소리를 받는 ‘저리여 소리’는 타지역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이 지역의 특정적인 논매기 소리라고 할 수 있다. 놀이꾼들이 가시적이고 규격화된 무용적 동작을 수용할 수 없는 고령층이어서 모든 동작이 오히려 우리나라 전통적 농경사회에서 이뤄진 농사꾼들의 언행과 동작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놀이에 필요한 소품 대부분은 참가한 놀이꾼이 직접 쓰던 것을 가져오거나 손수 만들어 나온 것이다.

웅상지역이 도시화된 지역임에도 명곡마을에 전통사회 농촌공동체인 농청이 1980년대까지 존속한 것은 문화 계승 측면에서 다행스런 일이다. 놀이에서 마지막 논매기인 ‘망시논매기’때 부르는 이유락 선생의 ‘논매기노래’는 일제강점기에 소멸될 위기에 처했다가 해방 후 부활했다. 그러다 점차 사라져가는 것을 1995년 ‘웅상향토문화보존회’가 결성되며 체계적으로 정리·보존·계승되게 됐다.

웅상농청장원놀이는 1996년 제11회 삽량문화제에서 재연에 성공했으며, 1999년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제40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장려상을 수상하고, 2002년 경남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됐다. 다른 지역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놀이로 웅상지역의 문화 풍습이 깃든 멋진 농업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얼과 삶이 담긴 전통놀이가 위기에 처해있다. 이 놀이를 정상적으로 행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140여 명의 인원이 필요한데 젊은 사람들이 참여를 기피하며 해마다 인원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마저도 70, 80대 고령자가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놀이를 실질적으로 이끌 기능 이수자도 매년 줄어드는 추세다. 소중한 무형문화재가 잘 보존돼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지역주민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가 필요하다. 오는 5월 5일부터 2일간 웅상체육공원 일원에서 개최되는 ‘웅상회야제’에 가면 다양한 프로그램과 함께 정감 있고 흥겨운 농청장원놀이를 직접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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