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들어선다. 산길 초입에 서면 늘 같은 바람이 나를 맞이한다. 쉰 해가 넘도록 오르내린 길이지만, 그 바람이 처음처럼 낯설고도 반가워 얼굴엔 미소가 띠어지고 숨을 깊게 들이쉬게 된다.
여덟 살 봄날, 산이 가까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하면서부터, 우암산은 내 삶의 일부가 되었다. 산은 놀이터였고, 학교였으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걷는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과 능선을 뛰어다니며 수정 조각을 줍고, 나무덩굴로 타잔놀이를 하고, 계곡에서 가재를 잡았다.
어떤 날은 혼자서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계곡의 가재 굴 앞에 앉아 몇 시간이고 기다렸다. 숨죽이고 굴속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눈을 떼지 않던 그 시간은, 이상하리만큼 전혀 지루하지 않았고 혼자인데도 무섭지 않았다. 그만큼 나에게 편안한 곳이었다.
그 산 위로 흘러간 세월은 아이를 어른으로 만들었고, 함께 뛰놀던 친구들도 저마다의 삶으로 흩어졌다. 그러나 눈을 감으면 계곡의 물소리와 숲의 향기, 나뭇잎 사이로 비쳐 내리던 햇살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 기억이 문득 그리워질 때면 다시 우암산을 찾는다.
산은 변한 것이 없다. 계절마다 빛깔과 운치만 달라질 뿐, 늘 같은 자리에서 맞아준다. 숲을 스치는 바람과 계곡의 숨결은 어머니 품속의 따뜻함을 닮아 있다. 그 따스함은 세상 어느 도톰한 이불을 덮고 있는 것보다 포근하다.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에 짓눌려 발걸음이 무거워지는 날이 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산길을 오른다. 답을 찾으려 왔지만 산은 답 대신에 걸음을 늦추게 하고, 숨을 고르게 하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게 했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옮기다 보면 복잡했던 생각이 잦아들고 마음은 제자리를 찾아간다. 우암산은 언제나 그렇게 말없이 나를 일으켜 세웠다. 나는 떠났다 돌아가곤 했지만 내가 기쁠 때도, 지칠 때도 늘 그 자리에서 묵묵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도 나는 산길 위에 서 있다. 산길은 인생을 닮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숨이 차는 고비를 넘으면 다시 평탄한 길이 이어진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빨리 가느냐가 아니라 멈추지 않고 걸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산은 오래전부터 가르쳐주고 있었다.
우암산은 내 삶이 시작된 곳이고, 내 마음이 자라난 곳이다. 그리고 언제든 돌아오면 말없이 품을 내어주는 고향이다. 언젠가 내 생의 걸음을 모두 마치는 날에도 여전히 같은 바람이 불고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나를 품어주던 그 바람이.


느낌이었어요.
산이 건네는 삶의 위로가 너무 따뜻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