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노 수필] '아버지' 라는 산
[이경노 수필] '아버지' 라는 산
  • 이경노 기자
  • 승인 2026.08.24 09: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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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노 작가 (치유학 박사)

어디선가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은 일제히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한 아이가 붕대로 감싼 남자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눈물을 쏟고 있었다. 다친 아버지를 처음 병문안 온 모양이다. 아이는 아버지의 다리를 어루만지며 서럽게 울고, 아버지는 아들을 달래고 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뭉클하여 눈을 감으니, 아주 오래전 기억 속의 장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중학교 2학년 때였다. 학교에서 돌아와 안방 문을 열었을 때, 병으로 쓰러져 전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된 아버지가 어둑한 방에 홀로 누워 계셨다. 인기척에 힘겹게 고개를 돌려 바라보시던 아버지의 눈빛이 지금도 선하다.

나는 울음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두 손을 가슴에 겹쳐 댄 채, 발로 방바닥을 더듬듯 들어갔다가는 이내 밖으로 나왔다. 둔탁한 무언가가 가슴을 세게 내리친 것 같았다. 예전 같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에, 어린 영혼이 한순간에 흔들리고 있었을 것이다.

어린 자식에게 아버지는 하늘이며 커다란 산이다. 세상 사람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보든 자식에게는 자기 아버지가 가장 큰 존재다. 언제든 달려가 숨을 수 있고, 어떤 비바람도 막아줄 것 같은 존재다. 그런 아버지가 쓰러졌다는 것은 어린 자식에게는 기대고 있던 큰 산 하나가 무너진 것과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신문 배달을 시작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반까지 신문 보급소에 도착했다. 신문을 가지런히 추리고 광고지를 끼워 넣은 뒤, 신문 뭉치를 겨드랑이에 끼고 아직 어두운 거리로 나섰다. 골목마다 신문을 돌리고 집에 돌아와 다시 학교에 가는 일은 생각보다 고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는 일어나셨고, 온전치 못한 몸으로 직장 생활을 다시 시작하셨다. 훗날 아버지의 말을 언뜻 들었다. 새벽마다 신문 배달을 나가는 나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다는 것이다. 어린 아들이 병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에 보탬이 되려고 철이 들어서 저러는 것이라고 생각하셨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사실 아버지의 생각처럼 깊은 뜻에서 시작한 일이 아니었다. 친구와 용돈을 벌어보자며 시작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굳이 그 사실을 말씀드리지 않았다. 아버지께서 그렇게 믿고 계시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하루하루 새벽길을 뛰고 걸으며 나는 조금씩 철이 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완쾌되지 않은 몸으로 하루하루 버티듯 생활하시던 아버지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셨다. 다시 아버지의 손을 잡을 수도, 따뜻한 손등을 어루만질 수도 없게 되었다. 그 뒤로 일 년 동안 매주 산소를 찾아, 무릎을 꿇고 마치 아버지의 손을 만지듯 비석을 오래도록 쓰다듬었다. 그리고 임종을 앞둔 아버지의 귀에 대고 드렸던 말을 다시 되뇌었다. “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어머니 잘 모시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아이는 자라면서 아버지를 넘어선다. 아이의 어깨는 넓어지고 걸음은 빨라지지만, 아버지의 등은 굽고 발걸음은 느려진다. 어린 시절에 올려봐야 했던 아버지를 어느 날부터는 내려다보게 되기도 한다. 하지만 다 자란 자식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여전히 커다란 산으로 남아 있다.

아버지 역시 평생 자식에게 그런 산이 되고자 했을 것이다. 자신이 흔들리면 자식의 세상까지 흔들릴까봐, 무너지고 싶을 때조차 애써 허리를 펴고 서 계셨을 것이다. 나 또한 한 아이들의 아버지로 살아간다.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면, 아이들에게 더 든든한 산이 되기 위해 힘써온 나날이었다.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자식에게 아버지는 커다란 산이다. 아버지는 오늘도 자식에게 산으로 남기 위해 힘들고 아픔을 내색하지 않는다. 그렇게 세상의 아버지들은 말없이 현관문을 나선다.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자식에게 오늘도 무너지지 않는 산이 되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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