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지는 가로수 거리를 걸어본다. 길가의 시니어 모델들은 지나는 이들의 사진 모델이 되어 환하게 웃고 있다. 나도 그들에게 사진 한 컷을 부탁했다.
깊은 가을로 들어서면 거리의 나무들이 울긋불긋 화려한 옷으로 갈아입고 지나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시니어 모델들이 멋을 뽐내며 무대에 오른 듯하다. 참 곱게도 늙었다.
봄날의 어린잎은 연둣빛으로, 여름의 무성한 잎들은 짙푸른 초록의 기운으로 세상을 채웠다. 하지만 이제 가을 이파리들은 노랗게, 붉게 또 어떤 잎들은 주홍빛으로 저마다의 빛깔로 물든다. 한여름에 비슷한 초록이었던 잎들이, 생의 끝자락에 이르러 비로소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는 것이다.
사람의 인생도 이와 같지 않을까. 젊은 시절에는 누구나 싱그러운 생명력으로 빛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얼굴엔 각자의 주름이 생기고 머리카락에는 연륜의 빛이 스민다. 젊음의 빛깔은 사라지지만, 그 자리에 세월이 빚어낸 또 다른 아름다움이 깃든다.
요즘 무대에 오르는 시니어 모델들을 보면 그런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젊은 모델들에게서는 싱그러움과 생동감이 느껴지지만, 시니어 모델들의 모습에서는 또 다른 매력을 발견한다. 당당한 걸음걸이와 여유로운 표정, 주름진 얼굴에 번지는 환한 미소에는 젊음이 흉내 낼 수 없는 숙성된 깊이가 있다. 오랜 세월을 살아오며 쌓아온 삶의 이야기가 얼굴과 몸짓에 배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에게나 살아온 세월만큼의 이야기가 있다. 기쁨과 슬픔, 성공과 실패, 만남과 이별을 겪으며 저마다 다른 삶의 색깔을 만들어간다. 어떤 이는 고난을 이겨내며 더욱 단단해지고, 어떤 이는 아픔을 겪으며 한층 너그러워진다. 단풍이 저마다 다른 빛깔로 가을 산을 물들이듯, 사람도 살아온 세월만큼 자신만의 색채를 지니게 되는 것이다.
가을날 단풍나무 아래를 걸으면, 알록달록 물들은 나무 아래에서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웃음꽃을 피우는 이들이 눈에 들어온다. 여름 내내 푸르렀던 나무 아래를 그냥 지나치던 사람들도, 가을이 되면 울긋불긋한 아름다움에 발걸음을 멈춘다. 머지않아 낙엽이 되어 떨어질 잎들이건만, 사람들은 그 마지막 빛깔에 감탄하며 행복해한다.
참으로 묘한 일이다. 나무는 잎을 떠나보내기 직전에 가장 화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푸른 잎이 생명의 힘을 보여준다면, 단풍은 세월이 빚어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사람도 그렇게 늙어갈 수는 없을까. 세월이 흐를수록 몸은 예전 같지 않겠지만, 젊은 날의 조급함을 내려놓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며 자신만의 색깔로 삶을 가꾸어간다면, 노년은 인생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수놓을 수 있는 시절이 될 수 있겠다.
단풍은 떨어질 날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이 지닌 빛깔을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 나도 저 단풍처럼 늙어가고 싶다. 푸르렀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기보다, 세월이 물들여준 색깔로 더욱 깊고 아름답게 빛나고 싶다. "내 인생의 가을도 저토록 화려할 수 있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