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를 담은 사찰, 홍룡사”
“무지개를 담은 사찰, 홍룡사”
  • 천소영 기자
  • 승인 2018.05.08 11: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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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창건
홍룡사폭포, 아름다움 정평
자연의 조화로움 담겨 있어
홍룡폭포.
홍룡폭포.

양산 천성산 자락에 위치한 홍룡사는 재단법인 선학원(禪學院)에 속하는 사찰이다. 절 이름 홍룡(虹龍)은 옛날에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에서 유래한다.

산 주변에는 신라 고찰인 통도사와 내원사가 있지만, 한곳은 조계종 교구본사라는 점 때문에 다른 한곳은 비구니 수행도량이라는 점 때문에 시민들의 발길이 쉽게 머물지 못한다. 반면 홍룡사에는 불자나 일반시민 모두 세속의 짊을 잠시 벗고서 머물 수 있는 삶의 여백이 있어 좋다. ‘물이 떨어지며 피어나는 무지개’로 풀이되는 ‘홍룡사’에 가면 염리심(厭離心)이 절로 난다.

홍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661∼681) 원효(元曉)가 창건한 사찰이다. 원효대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 일 년 내내 등산객의 발걸음이 끊이질 않는다.

원효가 당나라의 승려 1천 명에게 천성산에서 《화엄경》을 설법할 때 낙수사(落水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했는데, 당시 승려들이 이 절 옆에 있는 폭포에서 몸을 씻고 원효의 설법을 들었다 해서 이름을 낙수사라고 이름 붙여졌다. 산 이름은 본래 원적산이었으나 1천 명이 모두 득도한 후 성인이 됐다고 해서 천성산(千聖山)으로 바뀌었다.

원효는 산내에 89암자를 지어 1천 명의 대중을 가르쳤으며, 당시 각 암자에 흩어져 있는 대중을 모으기 위해 큰 북을 사용했다고 한다. 현재 그 북을 매달아 두었던 집북재와 《화엄경》을 설법하던 화엄벌 등이 남아 있다. 화엄벌은 8부 능선에 있는 광활한 억새평원이다.

9월부터 10월 말까지는 단풍과 함께 은백색 억새 물결이 장관을 이룬다. 또한 한반도에서 동해의 입출을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곳으로 알려져 매년 1월 1일에는 해맞이 행사가 진행된다. 정상부근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원요암도 자리하고 있다.

홍룡사 입구에는 법종 모양의 특별한 화장실이 있다. 이 앞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새겨져 있다.

“좋은 일로부터 때를 알리거나 사람을 모으기 위해 널리 사용해왔으며, 불교에서 범종 소리는 번뇌와 잡귀를 물리치는 역할을 한다. 화장실을 사찰에서는 해우소라 칭하며, 분뇨를 미련 없이 버리듯이 ‘근심을 떨쳐 버리는 장소’로 원효대사의 전설이 서린 천성한 기슭의 범종화장실에서 온갖 근심 거정을 떨쳐 버리고 편히 머물다 가길..”

홍룡사는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수백 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다가, 1910년대에 통도사 승려 법화(法華)에 재건됐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건물들이 젊은 모습을 띠고 있다. 절 이름 홍룡(虹龍)은 폭포 이름에서 유래한다. 작은 사찰인 홍룡사가 유명해진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사찰 뒤쪽 절벽을 타고 물줄기는 쏟아내는 홍룡폭포는 제1폭포와 제2폭포가 있는데, 옛날에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전한다. 1970년대 말 우광(愚光)이 주지로 부임한 뒤 중건과 중수를 거듭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존하는 당우(큰집과 작은 집)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종각과 요사채가 있고, 선방(禪房)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이다. 대웅전은 1910년대 중창된 근대 목조 건축물이지만 전통적인 조선 후기 건축 수법을 충실히 반영한 건물로 이곳 산세와 어우러져 상당히 아름답다.

홍룡폭포의 하단은 2개의 폭포가 더 있다. 초기에는 5단의 폭포였고 폭포의 이름은 오룡폭포(五龍瀑布) 였다. 상폭포의 왼쪽에 홍룡사의 관음전이 있다. 폭포 아래에는 홍룡사와 함께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가홍정(駕虹亭)이라는 정자가 있다. 가홍정은 1918년 석은(石隱) 이재영(李宰榮)과 죽우(竹友) 권순도(權順度)가 함께 세웠다. 폭포 아래 시원하게 뻗어있는 계곡은 피서철에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며, 상류인 원효산 정상 못 미친 곳에는 원효암이 있다.

권순도에게는 사연이 있다. 부산항이 열렸던 19세기 말의 이야기다. 부산 세관장 헌트의 관사에 권순도는 허드레꾼으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열아홉이었던 헌트의 외동딸 리즈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헤어지게 된다.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떠난 리즈는 그해 아들을 낳았다 한다.

홍룡사 아래쪽은 수량이 풍부한 골짜기 다섯 가닥이 모여 물도 넉넉하고, 곳곳에 너럭바위가 널려 있을 뿐 아니라 숲도 적당히 우거져 있는 등 계곡 풍광 또한 뛰어나 여름철이면 물놀이 피서객들로 인기를 끌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사명(寺名)에서 터에 이르기까지 물과 깊게 관련되어 있는 홍룡사는 관음도량이라고도 불린다. 폭포 옆으로 백의관음이 봉안된 관음전이 있고, 선방으로 이용하고 있는 무설전에는 천수천안관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홍룡사의 관음보살 중에는 폭포에 현현(顯現)한다는 낭견관음보살도 있다고 하는데, 1천여 년 동안 감로수를 쏟아낸 폭포와 인접한 곳에 관음도량이 들어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닌가 싶다.

삼층의 폭포에는 기암괴석이 폭포수가 떨어지는 뒷면에 돌출해 있다. 옛 기록에 따르면 상층은 높이가 24m(80척), 중층은 14m(46척), 하층은 10m(33척)이었다고 한다. 물이 사위에 부딪혀 거슬러 튀어져 그 물보라가 햇빛을 받으면 무지개가 서는데 폭포수가 마치 선녀가 춤을 추는 듯하고, 황룡이 승천하는 것 같다 하여 무지개 홍(虹)자와 용 룡(龍: 옛날에는 瀧-비 올 롱) 자를 쓴다. 옛날 천룡(天龍)이 폭포 아래에 살다가 무지개를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이 폭포는 동남 관광권 내에서는 높이가 최고로 높고 아름다운 폭포로 이름이 나 있어 사시사철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는 곳이다. 폭포 아래 서면 눈과 가슴이 저절로 정화되는 느낌이 들 정도로 시원함이 느껴진다.

찾아가는 길은 국도 35호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입구에서 물안뜰마을과 대석저수지를 지나면 홍룡사로 가는 외길이 나온다.

외길을 타고 1.5㎞ 정도 가면 공영주차장이 위치하고 있다.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가면 숲 속의 여유로움을 맛볼 수 있다. 여기서 왼쪽 길은 홍룡사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원효암 가는 등산로가 있다. 양쪽 길 모두 사시사철 물이 마르지 않는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에는 시원한 청량감을 느끼게 해 준다.

홍룡사로 가는 길 초입에 있는 물안뜰마을은 농촌전통테마마을로 500년 역사와 함께 형성된 자연마을이다.이 마을 또한 대석저수지와 천성산의 맑은 계곡을 끼고 있는 물과 마을이 조화되는 곳으로 경치가 빼어나고 곤충들의 생태가 잘 보전돼 있는 생태계의 보고로 홍룡폭포를 찾는 관광객들이 덤으로 누릴 수 있는 눈요기이다.

물안뜰마을에서는 해마다 7월이면 농촌전통문화체험 행사가 열려 야생화분 만들기, 쪽물 염색, 열매 공예, 떡메치기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다.

청명하고 장쾌하고 쏟아지는 폭포수는 세속의 번뇌를 잊게 해주고 자연의 조화로움과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올 여름은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이 있는 홍룡사로 폭포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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