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유의 지상 위에 시 한 칸
배이유의 지상 위에 시 한 칸
  • 배진숙 기자
  • 승인 2017.12.26 11: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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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둘러싸인 호숫가에

밧줄에 묶인 채 꿈쩍도 않고 있는 배 한 척

그 배 위에 내가 타 본다

뜻하지 않은 객으로 인해 놀란 듯

잠시 흔들린다

또다시 잔잔해진 배

나 또한 밧줄에 묶인 채 떠 있는

세상에 나 홀로

물에 떠 있는 나를 하염없이 바라본다

내가 고여 있다

시간이 잠시 고여 있다

풍경과 시간과 내가 정지된 꼭지점에서

석양이 유난히 붉다

뚜껑 없는 관 위에 누워

풍장을 꿈꿔본다

바람에 자유로이 훨훨 날고 싶은

영혼 하나 참 행복하겠다

백과 흑의 교대 시간이 다가오자

고요가 물 위를 자박자박 걸어오고 있다

- 오원량의 ‘풍장을 꿈꿔보다’

시집 ⌜새들이 돌을 깬다⌟에 수록 -

 

*

시는 쉽게 읽힌다.

호숫가의 물처럼 시간이 고여 있는

고요의 세계다.

시적화자는

굴레를 벗어나 자유로이 날고 싶은

밧줄에 묶인 배.

한 번 상상해보자.

석양이 풀어지는 저물녘

산으로 둘러싸인 호숫가, 밧줄로 묶인 배 위에

누워 있는 자신의 모습을.

시간에 바람에 고요히 흔들리다

한 장의 정물화가 된다.

그 위로 새떼들이 날개를 펼치며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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