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식칼럼] 평화는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자각, 내적 혁명으로부터
[이기식칼럼] 평화는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자각, 내적 혁명으로부터
  • 박미영 기자
  • 승인 2023.04.30 1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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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일한국을 꿈꾸며(3)】 "항구적 평화’ 실현 위한 가장
근본적ㆍ희망적 출발,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자각과 고백"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미국과 나토, 우크라이나 대 러시아 양상으로 확전되고 있다. 또한 북한의 러시아에 무기 제공, 대한민국의 우크라이나 지원 등 전쟁 양상이 동북아로 확대되면서 심히 우려했던 방향으로 가고 있다.

그리고 중국은 신사회주의 헌법에 자신들의 신성한 영토로 명시한 대만과의 통일전쟁을 불사할 기세이다. 이에 미국이 ‘중국의 의지’를 가로막으면서 전쟁 가능성이 증폭되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는 모든 인류가 원하고 있는 평화가 요원(遙遠)해 보인다. 암울하다!

이기식 가정연합 부산울산 대교구장(가야일보 자료사진)

존스 홉킨스 대학교 국제고등대학원(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의 미국 외교 정책 프로그램 책임자이자 교수인 마이클 만델바움(Michael Mandelbaum)은 저서 ‘The Ideas That Conquered The World’에서 평화(Peace), 민주주의(Democracy), 자유시장경제(Free markets)를 21세기를 지배이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전 세계를 지배해 왔다는 ‘평화’, 그 평화를 모두가 원하지만, 2023년 오늘 전 세계에서 이루어지는 평화는 ‘힘’, ‘무력’에 의존하고 있다.

정약용은 “무기는 설사 백 년 동안 쓸 일이 없다 해도, 단 하루도 갖추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고, 4세기 로마의 병법가 푸블리우스 플라비우스 베게티우스 레나투스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Si vis pacem, para bellum)’고 했다.

악(惡)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의 평화를 위한 유비무환(有備無患)은 군사력이 그 핵심이며,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무력에 기반한 평화를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이론은 ‘공격적 현실주의’이다.

이 이론은 존 미어샤이머(John Joseph Mearsheimer)가 발전시킨 국제관계학 이론으로 국제사회는 무정부상태이며, 국가는 합리적으로 행동하고 생존이 제1의 목표이다.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의 역량을 압도적으로 차이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요지이다.

이 관점에서 국가의 물리력을 강화해 나가는 것이 바로 평화를 지키는 핵심이 된다. 현재의 국제정세와 국제정세를 관조하는 주요 이론은 결국 ‘힘에 의한 평화’(peace through strength)이며, 이는 한반도를 둘러싼 모든 국가들의 기본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냉엄한 국제정치의 역학관계 속에서 우리가 염원하는 ‘비폭력 평화’를 기대하고 실현하기엔 역부족일 수 있어 보이며, 우리는 그러한 현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한반도의 남북 평화통일 역시 그러하다. 평화통일을 넘어 ‘항구적 평화체제’로 가는 길은 더욱 험난해 보인다.

하지만, 암울한 현실에 좌절하지 않고, 폭력에 굴복하지 않기 위해서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고'(키케로‘), '큰 희망이 큰 사람을 만든다(토마스 풀러)’는 말처럼 우리 모두가 가장 먼저 통찰해야 하는 것은 현실을 지배하는 ‘힘에 의한 평화’에 대한 성찰이다.

희망을 찾고 만들어 가는 사람은 화이불류(和而不流)의 태도가 필요하다. 악이 판치는 국제관계에서, 물리력 군사력을 갖추되 휩쓸리지 말아야 한다.군사력에만 의존한 결과는 군국주의이며, 만인을 고통으로 몰고 간다는 사실은 20세기 일본, 독일의 사례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비폭력 평화통일, ‘항구적 평화체제’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해결 시도이며 인간 스스로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 나타난다.

니체는 “사람은 짐승과 위버멘쉬(Übermensch, 초인) 사이를 잇는 밧줄,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라고 하면서, “인간의 마음 안에는 ‘짐승’과 같은 마음과 ‘초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의 마음이 존재한다”라고 했다.

원효대사는 대승기신론( 大乘起信論)에서 인간의 마음을 일심이문(一心二門), 청정한 성품인 진여문(眞如門)과 분별과 대립를 일으키는 생멸문(生滅門)으로 설명하고 있다.

플라톤은 파이드로스에서 “인간의 혼은 두 종류의 말(Horse)과 마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흰말이며, 하나는 검은 말이다. 여기서 흰말은 선한 본성으로서 유순해 마부의 말을 잘 듣는 말이며, 검은 말은 통제하기 어려운 욕망으로 제멋대로 날뛰며 마부의 말을 잘 듣지 않는 말”이라고 설명한다.

사도 바울(Paul)은 성경 로마서에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라고 고백하고 있다. 유교 역시 인간을 성선설과 성악설로 설명한다.

이렇듯 동서양의 성인과 성현들은 한결같이 인간의 모순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마음에는 선의 욕망과 이기적 혹은 악의 욕망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으며, 악을 물리치고 선을 향해 몸부림치고 있는 인간의 실존을 설파하고 있다. 인간과 사회의 모든 고통, 불행의 출발은 인간의 모순성에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인간 스스로 모순된 존재라는 사실을 자각한다면 인간은 스스로 악으로 가는 길을 선택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모순성에 빠진 인간의 가장 큰 어려움은 선한 마음을 붙들고 싶어도 붙들어지지 않으며, 동시에 이기적 욕망, 악의 욕망을 버리고 싶어도 버려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선한 마음을 붙들기도 어렵고, 악한 욕망을 버리기도 힘들다. 이러한 모순성에 빠진 인간에만 의존하여 지금까지 만들어 나온 평화는 비폭력적 평화를 만들기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공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평화를 위협하는 모든 근원에는 ‘인간 중심’, 인간의 내면의 모순성을 주관하지 못하는데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남북의 비폭력적 평화통일, ‘항구적 평화체제’를 만들어 나가는 그 첫걸음은 인간에 대한 성찰,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분명하고도 냉철한 성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신학자 하비 콕스는 ‘동양에로의 회귀’라는 주장을 통해 “동양의 우주관과 세계관은 서양 정신이 지니고 있는 한계를 극복할 것이며, 좌우 이데올로기의 갈등과 대립을 해결 할 것이다” 라고 했다.

이는 인간중심의 인본주의가 아닌, 신과 인간과 자연을 일체로 보는 유기적체적, 통합적, 통일적 세계관인 동양의 우주관과 세계관이 ‘분리’를 지향해 나온 서양 정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세계관 역시 인간의 모순성을 자각하는 데서부터 실현될 수 있다.

날로 격화해가는 전쟁 양상의 국제정세는 한반도의 평화통일, 비폭력 평화통일을 향한 여정에도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하지만, ‘항구적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이며, 희망적인 출발은 인간의 모순성에 대한 자각과 고백이다. 이러한 철저한 인간 본성에 대한 내적 혁명의 기대 위에 ‘항구적 평화’는 실현될 수 있기에 우리는 인간의 모순성을 성찰하는 지혜가 지금 이 시대에 강력히 요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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