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 가득 퍼지는 고소한 냄새에 아이들이 주방으로 왔다 갔다 한다. 아들의 생일을 맞아 미역국을 끓이고 있다.
들기름에 미역과 소고기가 볶아지는 고소한 내음과 마늘, 파가 들어가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입맛을 자극한다. 미역국이 다 끓고 나서 온 가족이 모여 앉아 식사를 한다.

아들은 제 생일이라고 주인공이 된 기분을 한껏 발산하고 있는데, 나는 한 마디 한다. “생일 축하해. 그런데 오늘은 네 생일이면서 엄마가 너를 고생하면서 낳아준 날이야. 엄마에게 감사해야 해” 아들은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하지만 정말로 고마움을 실감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다.
나는 아내가 첫째를 낳을 때부터 둘째, 셋째를 낳을 때 옆에서 함께 했다. 첫 아이를 낳을 땐 뭔가 가장의 책임감이랄까, 그런 게 작용해서 아내의 곁을 지켰다. 그러다보니 둘째와 셋째를 낳을 때에도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아내의 고통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하여 떨리는 손을 잡아주었지만, 그 고통까지 잡아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컸지만 아내의 진통 소리는 내 가슴속에 적잖은 울림으로 자리하고 있다. 지금도 산통의 안쓰러운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하다. 그래서 가끔 아내에게 서운한 일이 있어도 그 장면을 생각하면 마음을 내려놓게 된다. 10개월 동안 아기를 품고 있다가 모진 산고를 겪으며 출산한 아내의 노고를 생각해서다. 게다가 그 어려움을 세 번 씩이나 견뎌냈지 않은가.
엄마는 태중에 아기를 10개월 동안이나 품고 있다가 모진 고통 속에서 출산하게 된다. 출산의 숙명을 가지고 태어난 여자라도 출산의 두려움을 마주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여자는 약하나 어머니는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출산의 고통을 겪어내면서 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어머니란 생명을 잉태하고 탄생시키는 숭고한 존재다.
오래 전에 어디선가 ‘생일날 미역국은 낳아준 어머니가 먹어야 하는 것’이라는 말을 듣고 고개가 끄떡여지면서, 내 생일날 어머니께 미역국을 끓여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아내가 애 낳는 것을 지켜봤었기에, 나를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께서 가끔 지나가는 말로 “애 낳은 달만 되면 여기저기가 쑤신다. 너희들 낳고 산후조리를 제대로 못해서 그런 것 같다.”고 했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니, 돌아오는 내 생일에는 어머니께 미역국을 꼭 끓여드리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생각에 내 생일날까지 한 달 여 동안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어머니께 난생 처음으로 낳아주신 고마움을 표한다고 생각하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생일 전날 설레는 마음으로 마트에 가서 미역과 소고기를 샀다. 생일날 새벽, 미역국을 끓이는 손이 바빴다. 미역국을 가지고 어머니 집에 들어서는 것이 좀 어색하기도 했지만, 마음이 약간 들떠 있었다. 어머니와 식탁에 마주앉아 고맙다는 말씀을 드리기가 겸연쩍어, “자식 생일날 미역국은 원래 엄마가 먹는 거래요.”하면서 쑥스럽게 말했다. “고맙다”하고 말하시는 어머니. 목메어 쉬이 밥을 넘기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그 옛날 나를 낳으시고 멀건 미역국 한 그릇을 비우는 듯 마는 듯 드시고, 바로 일어나 집안일을 하셨을 것이다. 그 날이 어머니로서는 자식을 낳고 처음으로 편하게 앉아서 출산의 노고를 인정받은 날이 아니었을까. 또한 그간 가슴에 맺혔던 서러움의 눈물이 조금이라도 닦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아이들과 아내는 ‘달그락’ 식기소리를 내며 미역국을 맛있게 먹고 있다. 곁눈질로 바라보니 미역국을 먹고 있는 아내가 몸이 예전 같지 않은 것 같아, 출산 시의 모습이 눈에 겹쳐서 한 마디 했다. “그 동안 애들 낳느라고 고생했어, 많이 먹어”
훗날 우리 아이들이 저희들 생일날 제 엄마에게 미역국은 끓여주지 못해도, 엄마를 향하여 잠시라도 고마운 마음을 가져보는 날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