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느림의 미학을 찾아서
[기자수첩]느림의 미학을 찾아서
  • 천소영 기자
  • 승인 2018.02.01 13: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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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놀라울 만큼 급속도로 성장한 나라다. 그래서인지 언제, 무엇이든 ‘빨리 빨리’를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가 됐다. 특히 인터넷 속도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수준인데, 우리나라의 인터넷 평균 속도는 28.6Mbps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게다가 13분기 연속 세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광대역 인터넷 보급률도 1위를 기록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의 보급률도 매우 높아 어디서든 빠른 정보교류가 가능하다. 이제는 가만히 앉아 검색만 하면 원하는 정보 대부분을 손쉽게 얻을 수 있다.

이 같은 ‘빨리 빨리’ 문화는 우리나라를 성장케 한 원동력이 됐고, 편리함을 주지만 반대로 삶의 여유를 앗아가기도 했다. 공중전화 대신 스마트폰이, 문자 대신 카카오톡이 쓰이면서 받고 싶지 않은 전화를 받아야 하고 내가 보낸 메시지를 읽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글자 옆의 ‘1’을 신경 쓴다. 현재 우리는 모두 속도에 떠밀려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쁘게 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며 내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삶의 여유가 필요하다. 그러나 천천히 살고 싶어도 빨리 만을 추구하는 주위의 시선과 환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러한 삶에 지쳐서일까 최근에는 느림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들이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하루하루를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상징하는 대명사로 여겨졌던 ‘패스트푸드’는 한물가고 건강에 좋은 식재료와 낮은 칼로리의 ‘슬로푸드’가 주목받고 있다. 이외에도 현재의 인생을 즐기자는 뜻의 ‘욜로’, ‘슬로우라이프’ 등이 유행하면서 아날로그적 미학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로 ‘느린 우체통’이 있다. 양산시는 지난 27일 양산타워 6층 홍보관에 느린 우체통을 설치했다. ‘느린 우체통’은 우정사업본부가 정식으로 운영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방자치단체와 공공기관에서 추억을 기념할만한 장소에 설치한 우체통이다. 우체통이 위치한 곳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엽서나 직접 가져온 우편물에 사연을 적어 우체통에 넣으면 6개월이나 1년 뒤 적어둔 주소로 배달을 해준다. 기다림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겐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기다리는 설렘과 함께 감동을 배달해주기도 한다.

이렇게 직접 손으로 쓴 뒤 우체통에 넣은 편지는 미래와 과거를 이어주는 하나의 매개체가 된다. 느린 우체통을 이용한 사람들 중 많은 수가 친구, 가족, 연인과 더불어 미래의 나를 그려보고 과거의 나를 반성하기 위해 스스로에게 편지를 썼다. 그 모습을 보며 새삼 당장의 삶에 치중해 놓쳐버린 것이 얼마나 많은가 느낀다. 양산타워 한편에 자리 잡은 이 우체통이 빠름과 디지털 문화가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작은 여유를 되찾아 줄 것이라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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