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광태 칼럼]술과 삶에 대한 짧은 생각
[류광태 칼럼]술과 삶에 대한 짧은 생각
  • 이정윤 기자
  • 승인 2018.11.01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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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광태 논설위원/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사무처장
류광태 논설위원

술은 운명적으로 나의 친구다.
내 고향은 경남 김해군 주촌면酒村面이다. 임신 8개월까지는 초량동에 살았다는데, 선친이 이사를 급작스럽게 강행하셔서 술마을이 고향이 되었다. 운명이다.

주촌은 과부촌에 가까웠다. 국민학생들에게도 술에는 관대한 편이었고, 초뺑이인 남자 어른들은 대체로 단명하셨다. 경로당과 노인정 등에는 할머니들이 압도적 다수셨다. 여필종부女必從夫가 예법이었으니, 이 상황은 역전되지 않았다. 근데다 진례면과 주촌면은 평야가 많은 김해에서 상대적인 산골이었고, 전형적인 집성촌이었다.

나는 붉을 주朱 자, 주 씨 집성촌의 유일한 류가였다. 술 酒을 많이 먹어 붉을 주짜가 되었다고 막 우기는 어른들이 많이 사셨다. 명 개국조 주원장 후손이라 자랑하는 사람은 드물었고, (주)논개를 자랑스러워한 마을 소수파 중 극소수파다. 우리 마을이 주촌면에서 가장 컸다.

술로 인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걸 보고 자랐다. 그러함에도 나는 애주가다. 부친이 주촌 주당酒黨 집단 지도부 중 한 분이셨고, 취하시면 얘기와 노래로 마을이 떠들썩했던 분이셨음에도 형과 나는 술 안 먹겠다는 다짐은 안 하고, 술 취하면 노래와 말 없이 자기로 어린 시절 결의했다. ^^

큰 키에 술 취하면 형과의 약속 지키느라 그냥 자버려서 민폐를 많이 끼치고 살았었다.

술은 참 좋은 발명품이고, 그만큼 유해하다.

난 기독교 서리집사다. 부끄럽게도 말술의.^^ 성경에서 술에 대한 경고는 "술 취하지 말라. 술 취하면 망령 되나니."가 가장 무서운 표현이다. 적어도 내가 알기론. 믿음의 사람 욥이 술 취해서 크게 실수하는 장면도 끔찍한 편이다.

우리 선조들은 음주 행위를 '유희'를 넘어 '예술'의 영역으로 승화시키셨다는 기록들이 많다. 음주를 시詩 서書 화畵와 함께 풍류의 한 구성 요소로 보셨단다.
중국이나 다른 나라들도 다르지 않으리라. 퇴계의 사표셨고, 나도 아주 존경하는 도연명은 술을 "시를 낚는 바늘"이라고 말씀하셨단다. "근심을 잊게 하는 명약"이란 극찬도 하셨단다. 독주는 불면증 치료제이기도 하다. 알콜릭의 위험을 수반하긴 하지만. . .

디오니소스나 박카스는 신의 영역이니 폐일언한다.

우리 조상들에겐 '향음주례鄕飮酒禮'가 있었다고 한다. 글 그대로 해석하면, 시골이나 고향에서 술 마시는 예법인 셈이다. 향음주례의 핵심을 보니, '절제'와 '예의를 갖추어서 술 자리를 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진상'이 되지 말라는 얘기다. 거상巨商 임상옥의 '계영배'란 하늘이 내린 술잔을 떠올리면 좋겠다.

술은 담배보다 오랜 역사를 가진 인류의 동반자다. 아담도 포도주를 과하게 마셔서 이브의 유혹에 넘어갔을 지도 모르겠다. 선악과善惡果를 먹어 사망과 두려움에 떠는 인간이 되었다는. . . 짧은 징역 때 강제 당한 금주와 40일 금주 두 번이 쉰 두 해 금주 최고 기록이다.

술로 인해 많은 사람과의 소중한 인연을 얻었고, 그만큼 잃은 것도 많은 못난 삶을 살아왔다. 영욕을 함께 해온 오랜 친구와 절교 선언. 나는 못 하겠다.대신, 예술로까지 승화시키진 못 한다 할지라도 풍류風流의 도구로 삼겠다는 다짐을 이 멋진 가을밤에 해본다. 연연하지 않겠다. 애걸복걸하거나, 집착하지 않겠다. 불경의 경구를 새기고 실천해야겠다. "사랑할수록 멀리 하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애주가이자 명문장가, 김중배 선생의 말씀으로 줄인다.
"사람이 곧 술이요, 술이 안주다. 얘기가 곧 술이요, 술이 안주다."
술이 목적인 술자리는 절대 안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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