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홍의 '마의 태자'
박재홍의 '마의 태자'
  • 김태우 기자
  • 승인 2018.06.16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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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유차영 한국콜마 상무이사(사진제공=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유차영 한국콜마 상무이사(사진제공=한국콜마 여주아카데미).

노래는 세상과 통한다. 공자 말씀이다. 치세락(治世樂)·난세분(亂世憤)· 망국탄(亡國嘆)이다. 평화로운 시대에는 즐거운, 어지러운 시대에는 분통 터지는, 나라가 망한 때는 한탄의 노래가 불려진다.

이 노래가 탄생한 1956년은 6.25전쟁 총포성이 멎은 지 3년 째. 폐허의 잿더미 속에서 펼치던 부활의 몸부림, 그 황망한 시대를 작사가 손로원은 1천여 년 전, 금강산으로 들어간 불운의 마의태자를 음유했었는지 모른다. 가락은 이재호가 엮었고 노래는 박재홍의 목소리에 태워졌다.

달빛만 고요하게 태자성에 슬픈 추억을

바람 따라 물결 따라 길손을 못 가게 하네

아~ 피눈물에 무덤이 된 마의태자 우리 님아

풀벌레 울적마다 눈물이 젖는 구나

태자성 우리 님아

(박재홍의 ‘마의태자’1절)

노랫말 속 태자성(太子城)은 금강산 내금강 명경대구역 백천동에 위치해 있는 마의태자성(麻衣太子城)을 말한다. 태자가 풀 옷을 걸치고 머물던 자리. 장안사(長安寺)는 금강산 내금강에 있는 사찰. 유점사·신계사·표훈사와 함께 금강산 4대 사찰. 6세기에 고구려 승려 혜량이 신라에 귀화하며 창건했다고 하며, 이은상 작사 홍난파 작곡 ‘장안사’가곡의 소재지.

그는 신라56대 경순왕의 아들. 경순왕은 후백제 견훤과 고려 왕건 세력에 눌려, 935년에 고려에 투항귀부(投降歸附)하였다. 이에 태자는 반대를 하며 삼베옷을 걸치고 금강산으로 들어간다. 이때 그가 마지막으로 상투머리를 자른 곳이 단발령(斷髮嶺)이다.

경순왕은 927년부터 935년 까지 재위했다. 본명은 김부(金傅), 연천군 장남면 고랑포리에 능(陵)이 있다. 삼국유사에는 김부대왕으로 기록되었다. 투항한 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의 맏딸 안정숙의공주와 아홉째 딸 왕씨 부인을 차례로 아내로 맞이했었다.

935년 11월 경순왕은 신라 신하들을 대동하고 금성(경주)을 떠나 송악(개성)으로 향했다. 당시 행렬이 30리가 넘게 이어졌으며, 구경꾼들이 울타리를 두른 듯했단다. 송악에서 왕건은 그를 직접 맞이했으며, 유화궁(柳花宮)에 머무르게 하면서 사위로 삼았다. 12월에는 정승공(正承公)에 봉했다. 신라 왕(王)이 고려 공(公)이 된 역사의 아이러니였다.

파주시 장단면 사천강이 흐르는 벌판 가운데 도라산(都羅山)이 있다. 도라산전망대와 도라산역이 있는 곳, 높이 156m. 낭랑공주는 고려의 공(公)으로 침몰한 남편을 위해 산 중턱에 암자를 지었다. 영수암(永守菴). 정승공은 날마다 이곳에 앉아서 신라 방향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단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 성도 도(都) 신라 라(羅).

마의태자 노래는 1934년 미스코리아(김추월 1896~1933)이 먼저 불렀다. ‘풀 옷을 몸에 가고 금강에 해 지우니 / 망군대 바위 돌에 색인 뜻 한숨지네’. 모란봉이라는 예명의 그녀는 이 노래로 ‘금강산에 숨어 있다가 봉화를 들고 나온 천사’라는 칭송을 받았다. 1931년에는 안기영이 가곡으로, 1957년 손인호, 1982년 송창식, 1999년 조영남이 각각의 가사와 멜로디로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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