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민사회대책위 "이기대 훼손 반대, 퐁피두 유치 중단" 촉구
부산시민사회대책위 "이기대 훼손 반대, 퐁피두 유치 중단" 촉구
  • 박미영 기자
  • 승인 2025.06.23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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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권침해 불평등계약, 불투명ㆍ일방적 추진 밀실행정... 매우 심각한 문제"

부산 시민사회가 "부산시는 이기대를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훼손하지 말라"며 "이기대 퐁피두 분관 유치 추진을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부산환경운동연합과 '퐁피두분관유치 반대 부산시민·사회·문화대책위원회'는 23일 발표한 논평에서 "시가 프랑스 퐁피두센터 분관 유치를 추진하며, 이기대를 ‘예술공원’으로 개발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으나, 추진과정은 시작부터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부산광역시청 후문 입구에서 이어지는 1인 시위. 가덕도신공항 철회 촉구(왼쪽부터), 황령산 난개발 중단 촉구, '혈세낭비' 퐁피두 부산센터 결사 반대 등을 요구하는 문구를 적은 대형 팻말을 들고 있다.(2025.3. 사진=양삼운 기자)

대책위는 "2023년 10월, 시는 퐁피두센터와 분관 유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지만, 이 협약은 시민 누구도 알 수 없도록 대외비 상태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로만 작성했고, 관련 세부조건 역시 지금까지 제대로 공개된 바 없다"며 "이 계약의 존재는 2024년 10월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서야 처음으로 시민사회에 알려졌다. 시민의 공간을 다루는 정책이 이렇게 불투명하고 일방적으로 추진된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해당 MOU에는 법적 분쟁 발생 시 프랑스 법률을 따르고 파리 국제중재법원을 거친다는 조항이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한 대책위는 "부산에 세워질 공공문화시설임에도, 그 권리와 책임의 기준을 외국 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시민 주권을 침해하는 불평등 계약이라 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의 법과 절차가 배제된 상태에서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되는 사업이 밀실에서 체결된 것은 명백한 행정의 실패"라고 규정했다.

이어 "이기대는 단순한 유휴 부지가 아니다. 부산 남단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이기대는 기암괴석과 해식절벽, 갯바위 군락과 다양한 해양 생태계가 공존하는 귀중한 자연유산"이라고 강조한 대책위는 "수많은 철새가 이곳을 거쳐가고, 바다와 숲이 어우러진 그 풍경은 도시 안에서 자연의 리듬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흔치 않은 장소"라며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것도 바로 이 생태적·지질학적 가치 때문이다. 이기대는 콘크리트 구조물이나 문화적 상징으로 대체될 수 없는, 고유한 생명의 자리"라고 역설했다.

대책위는 "시는 이토록 중요한 생태공간에 대규모 문화시설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공론화조차 없이 추진했다"며 "환경영향평가도, 지역주민과 시민사회와의 논의도, 전문가 자문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규탄했다.

"그뿐만 아니라 시는 아직 건축계획조차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37억원 규모의 ‘아트 파빌리온’ 조형물 예산을 시의회에 제출해 논란을 키웠다"고 지적한 대책위는 "지난해 말 시의회는 이 예산을 전액 삭감했지만, 시는 곧이어 예산을 재제안했고,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사업 준비를 위한 최소한의 금액'이라며 2억 5천만 원을 편성했다"며 "이후 상임위는 ‘총사업비 37억 원 범위 내 조건부 추진’을 명시하며 계획을 통과시켰다. 이는 사실상 사업을 기정사실화한 것이며, 형식만 바꾼 채 행정의 밀어붙이기를 정당화한 것에 다름 아니다"고 질타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수차례에 걸쳐 시에 공론화 추진을 제안해왔다. 이기대의 자연환경과 도시문화 정책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위해, 전문가·시민·행정이 함께하는 공개적인 협의과정을 마련하자는 것이었다"며 "그러나 시는 이 제안을 거부하거나 외면한 채, 시민사회의 우려에 답하지 않고 일방적인 추진을 고수하고 있다. 자연과 도시의 미래를 함께 논의하자는 목소리를 무시한 이 태도야말로 가장 큰 문제"라고 성토했다.

이어 "문화예술은 도시의 중요한 자산이지만, 그것이 기존의 생태와 공동체적 가치를 희생하면서 추진되어서는 안 된다. 시민사회는 단지 반대를 외치는 것이 아니다. 이기대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고, 모두의 공간으로서의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절차와 소통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자연을 훼손하며 건립되는 공간이 과연 예술일 수 있는가.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유리벽 속의 작품이 아니라, 바람과 파도,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이기대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시민사회는 "퐁피두 분관 유치와 관련된 모든 계약과 추진 내용을 시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라. 지금의 일방적인 개발 계획을 즉시 중단하고, 문화·환경·도시계획 전문가와 시민사회가 함께 참여하는 공론화 과정을 시작하라"며 "이기대의 생태환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사업 전반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라"고 요구했다.

"이기대는 부산의 자연이자 시민의 삶이 어우러진 공간"이라고 거듭 강조한 대책위는 "생명과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은 예술이 될 수 없으며, 밀실에서 결정된 정책은 시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예술을 빌미로 한 개발이 아니라, 자연 그 자체에 대한 존중"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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