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 던져
"이게 나라냐"며 묻는 깨어있는 시민 돼야 민주주의 숙성

시민들의 자발적 후원으로 만들어진 독립영화 <오장군의 발톱>이 양산 메가박스에서 상영됐다. 2시간 가까운 상영시간이었지만 한 편의 깔끔한 단편소설을 읽은 듯 했다. 영화는 전쟁이라는 배경을 통해 한 개인의 존엄성이 어떻게 파괴되어 가는지를 보여준다.
전투 중에 꽃분이, 어머니, 먹쇠가 나타나면서 상상이 이뤄진다. 군인, 국가, 총으로 상징되는 것들과 대비된다. 그러면서 전쟁의 잔혹함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준다. 까치골에서 꽃분이랑 엄마랑 먹쇠랑 감자밭 갈구고 사는 시절을 꿈꾸는 이등병 오장군. 까치골은 우리의 이상향이다.
오장군은 성품이 깨끗하고 순박하다. 그는 총을 무서워 하는 군인이다. 오장군은 "총은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기 때문에 무섭다"고 한다. 이 대목에서는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떠올랐다. 타인을 살상하는 무기를 들 수 없다는 그들의 신념은 지켜져야 한다.
영화는 1970년대 제작된 동명의 연극을 바탕으로 만들었다. 수십년이 지난 스토리지만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울림을 준다. 그것이 문학의 힘이고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문학이라는 인류가 만들어낸 가장 고차원적인 예술이니까 말이다.
영화에서 "국가는 잘못을 하지 않는다. 국가는 개인의 행복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대사가 있다. 섬뜩했다. 실제로 그런 시절이 있었다. 한 개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되기 십상이었다. 베트남에서 우리 청년들은 수많은 피를 흘렸고 도로와 항만 건설현장에서 강력한 국가에게 개인의 행복은 질식되고 말았다.
오늘날에도 그 질문은 유효하다. 우리에게 과연 국가란 무엇인가? 국가가 있기에 국민이 보호받을수 있다는 착각에 빠져서는 안된다. 국민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 국가이지 않는가? 국가를 위해 희생이 따라야 한다는 폭력은 영화 상의 장치를 통해 더욱 극대화 된다.
행정의 실수로 오장군은 군에 입대하게 됐다. 나치스가 유대인을 학살하기 까지 중간에 수많은 서류들을 결재했던 그들도 모두 범죄자인 것처럼 동명이인을 입대하기 까지 작용했던 행정이라는 국가 권력의 발동도 한 개인에게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
우리는 부강하고 민주화된 국가를 위해 희생됐던 그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를 표해야한다.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국가가 개인의 존엄성을 파괴하지 않는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행복 추구권이 있는 우리 개인들이 그러기 위해서는 참여해야 하고 물을 수 있어야 한다. 국가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거짓말에 속지 말자. 영화가 나에게 준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