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유의 지상 위에 詩 한 칸
배이유의 지상 위에 詩 한 칸
  • 배진숙 기자
  • 승인 2018.01.15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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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딴집

폭죽소리든 천둥소리든 소리만 나면 누가 왔나 나무는 발뒤꿈치를 든

다 기쁜 일도 드문 슬픈 일도 드문 뜬소문도 낡고 헐어서야 들어서는

낡은 집이 할 수 있는 유일한 놀이다 주기를 알 수 없다는 게 커다란 흠

이다 자식들은 밥풀 같은 꽃을 따먹으며 사방 꽃무늬 벽지처럼 가지를

뻗어 대처로 떠나고 남은 집은 감나무 까치밥처럼 쪼그라졌다 빈 집의

온기를 살리려 나무는 폭죽처럼 팝콘처럼 그리움을 터뜨렸다 터뜨리고

터뜨리고 화력을 올리느라 앙상히 뼈대만 남았다 아랫돌을 빼어 윗돌

을 괴는 나무의 소망 기우뚱, 마지막 폭죽을 준비 중이다.

- 진명주의 ‘외딴집’

⌜작가와 사회⌟ 69 게재 -

*

미국 작가 애드가 앨런 포의 단편소설 <어셔가(家)의 몰락>을 떠올리게 한다.

분위기는 전혀 다르지만, 그 집에 사는 사람의 운명과 같이 한다는,

사람과 사물에 영혼이 있어 교류하고 교감하는 공동운명체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어셔 집안이 대대로 살아온 낡고 큰 저택이 주인이 병들고 죽자, 집도 와르르 무너지며

늪 속에 잠긴다.

시는 훨씬 밝고 깜찍하지만, 집안사람들이 다 떠난,

그리움과 외로움을 앓고 있는

낡은 외딴집이 쓰러지기 전

마지막 장렬한 죽음을 준비 중인

까치밥처럼 쪼그라진 집의 관점으로 본

시인의 시선이 재미나다.

애잔한 풍경인데, 놀이처럼 죽음을 준비하는 사물의 모습을

사람이 닮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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