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태 칼럼] 민초들의 희생으로 역사발전
[정현태 칼럼] 민초들의 희생으로 역사발전
  • 박정애 기자
  • 승인 2018.09.30 09: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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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안시성' 감상평
정현태 논설위원
정현태 논설위원

어젯(21일) 밤 남해보물섬시네마에서 아내와 함께 영화 <안시성>을 관람했다. 통쾌한 눈물이 났다.

서기 645년(보장왕 4년). 천하패권과 나라의 운명을 두고 당나라와 고구려가 벌인 건곤일척의 대회전!

고구려 친정(親征)에 나선 당태종 이세민의 군대는 20만, 안시성 군사들은 5천명! 40배의 전력 차이 앞에 싸워 이긴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러나 안시성 양만춘 성주와 군사들은 "누군가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뺏으려 할 때. 그땐 결단코 싸워야 한다"며 안시성민들을 지키기 위해 결사항전을 다짐한다.

결전을 앞두고 안시성 성주 양만춘 장군은 이렇게 외친

"우리는 물러서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무릎 꿇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는 항복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이 지도자다.

결단해야 할 때 결단하는 것이 지도자다.

하지만 그 싸움과 결단은 오로지 백성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양만춘 성주는 대막리지 연개소문의 지원조차 없는 고립무원의 상태에서도 오로지 안시성의 백성을 지키는 것이 자신의 책무임을 잊지 않았다.

결기에 찬 양만춘 성주의 이 외침은 안시성 성민들과 고구려 백성들의 난공불락의 마음의 성채가 되어 불가능을 가능성으로 만들었고, 마침내 눈에 화살을 맞고 퇴각한 당태종이 "다시는 고구려를 침공하지 말라"고 유언할 정도로 동아시아 최고의 승리를 이끌어낸 원동력이 되었다.

영화 <안시성>을 통해 이름없는 민초들의 영웅적인 투쟁에 대해서도 큰 감명을 받았다. 안시성의 군사와 성민들은 포거(투석기)와 충거(성벽을 파괴하는 돌격용 수레)를 앞세운 당나라 군사의 대공세에도 불구하고 결사항전하면서 안시성을 잘 지켰다.

그러나 양만춘 성주와 군사들도 안시성보다 더 높은 토산(土山)전술 앞에선 속수무책이었다. 기마부대장 파소와 백하부대장 백하의 당태종 기습 암살계획이 모두 실패하자 마지막으로 안시성민들은 토산 아래로 땅굴을 뚫은 뒤 갱목을 불태워 토산을 붕괴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갑자기 내린 비로 갱목에 불이 붙질 않자, 땅굴은 팠던 안시성민들은 도끼로 갱목을 찍어 토산을 붕괴시킨 뒤, 자신들도 함께 함몰 전사한다.

나는 이 대목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이름조차 기억해 주지 않아도, 손바닥에  피가 나도록 노를 저어  명량대첩과 노량대첩을 승리로 이끌었던 이름없는 격군(格軍)들처럼, 자신의 목숨을 던져 이 땅을 지켜온 수 많은 역사 속의 민초들이 떠오르면서 감동의 눈물이 흘러내린 것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서기 645년 9월 18일.

안시성 전투의 승리로 고구려 땅엔 평화가 찾아왔다.

다시 2018년 9월 18일.

평양정상회담으로 한반도는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강물은 결국 바다에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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