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 먹는 김에서 8살 즈음 증조부 제삿날의 김 맛이 났다.
오십에 먹는 미역국에서 10살 즈음 할머니 생신날 먹은 미역국 맛
났다.
이를테면 그 오래 전의 김과 미역국 맛이 삐삐의 진동음으로 울리
는 것이지만
갱년기의 몸이 공중전화부스도 없는 깊은 산중 같아서
김 한 장 한 장에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치던 것이나
닭을 우려낸 미역국에 닭살을 찢어 넣던 것이나
수건을 두른 엄마의 동영상이, 폐쇄된 시티폰 기지국에 묻힌 꼴이
된 것이다.
그래서 가을 초저녁 하늘빛이 놋그릇쯤일 때는, 기러기떼가
어린 시절을 앞세우고,
숟가락 젓가락 부딪히는 소리를 내면서 서산을 넘어가고 만다.
- 조풍호의 ‘오래된 삐삐’
<도요문학무크>, 9집에 수록 -
*
미각은 정직하다.
한번 혀에 각인된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특히 어릴 때 할머니나 어머니가 해주던
수제비나 부침개, 김밥, 식혜 등등
종류는 수없이 많다.
이런 어릴 때 먹던 음식과 함께 그때의 정경이
현실에서 돌연하게 생생하게 환기되며
추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맛 하나, 기억 하나, 맛 둘, 추억 둘…
그 당시 음식을 나누며 함께 했던 사람들은 없지만
미각은 남아 언제든 현재태가 된다.
들기름이나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쳐 석쇠에 굽던 그 김 맛은
요즘 마트에 가면 번들띠로 묶어 파는 제품용 김으로는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독특한 맛이 있다.
또 누군가는 어릴 때 숙모가 몸을 풀어 미역국을 먹는데
옆에서 지켜보다 얻어먹은 그 미역국 맛을 잊을 수 없다고 한다.
쇠고기도 넣지 않은 단지 미역에 간장으로만 간을 한 순수한 미역국인데.
미각이란 그런 것이다. 추억과 함께 오는 것이기에
그 고유의 맛을 대체할 수 없는 동심 속 각인 같은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