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이유의 지상 위에 詩 한 칸
배이유의 지상 위에 詩 한 칸
  • 배진숙 기자
  • 승인 2018.01.22 1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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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일 답답하고 피곤하기 짝이 없다는 생각이 들 때, 어떤 용기가

필요하다는 생각 간절해질 때, 나는 밤길을 걸어 대연동 뒷골목 막다른

곳에 있는 대남포차로 간다. 그 집 나지막한 슬레이트 지붕 아래, 삭아

곧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문을 밀고 들어가면, 낡은 탁자와 삐걱거리는

의자들 사이로 몸을 최대한 웅크려야 한 사람쯤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 있다. 거기 쪼그려 오줌을 누고 있으면 생의 무늬가

보인다. 어두운 저 아래서 끓어오르는 똥냄새와 술꾼들이 함부로 갈기

고 간 오줌과 들이친 빗물이 만나 피워낸 붉은 연꽃, 사람 몸에서 빠져

나온 몸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몸과 연緣을 맺어, 함께 썩고

삭아가며 향기 풍기는, 그 부패의 향기가 삶의 향기를 맡게 하는, 붉은

연꽃을 보며 서럽게 오줌을 누고 있으면, 느닷없이 웃음과 울음이 터지

고, 이전에 다년간 사람도 꼭 이런 자세로 저 꽃을 보았으리라는 확신

이 든다. 그런 시간을 보낸 후 다시 아침을 맞으면 일상의 모든 일들이

지상에서 처음 접하는 것처럼 새롭게 시작되곤 하는 것이다.

- 김순아의 ‘붉은 연꽃’

<부산시인>, <양산문학>22호에 수록 -

 

 

*

‘대남포차’에 한 번 가본 적이 있다.

경성대 근처에 있는, 주당들 사이에 꽤 알려진 명소다.

시에 나오는 것처럼 나지막한 슬레이트 지붕에 삭아서 부서질 것

같은 작은 문을 열고서 몸을 숙이고 들어가야 한다.

해가 기울면 이미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린다.

실내는 손님들로 꽉 차 있다. 와글와글. 한 테이블에서 바로 두세 자리 건너에 있는 동행과

대화하려면 큰 소리를 질러야 한다. 활기가 넘친다. 선술집, 목로주점의 분위기를

떠올리면 된다.

시에서처럼 그곳의 재래식 화장실에는 가보지 못했다.

코를 쥐고서 한시라도 빨리 탈출하고픈

좁고 냄새나는 변소에 쭈그려 앉아 술꾼들의 온갖 배설물을 내려다보며

삶의 냄새를 맡고 붉은 연꽃을 보는 시인은 분명 예사롭지 않다.

뻘 속에서 아직 피지 않은 연꽃을 보고, 피워 올리는 사람이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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