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전기는 꽃을 키우는 사람의 때, 기록물이다
내가 나의 꽃모양이나 빛깔을 알고 있었느냐는 중요하
지 않다
처음에 꽃을 키우는 사람과 꽃은 둘이었다
둘로 나뉘어져 있던 거리를 좁히기 위해
꽃은 먼 곳에 멈춰 있었고
꽃을 키우는 사람은 발소리 대신 물을 주었다
따뜻한 햇살이나
성실히 주는 물은
감정의 소모라기보다 냉철한 질서였다
물을 주는 걸 잊고 독서나 연애에 빠진 적이 있었다
꽃의 위태로운 모습을 볼 때마다
하인의 천분은 진실이며
꽃은 진실의 집약물이라는 걸 알았다
꽃을 키우는 사람의 순응이 다시 모여왔다
꽃이 피어오는 걸 보면서 하인의 야심을 알아차렸다
꽃이 나타날수록 하인은 희미해져갔다
물을 주던 사람이 물과 함께
점점 꽃으로 흘러들어가 흔적도 남지 않았다
겨울이 오면 나는 다시 하인으로 소환될 것이다
- 박춘석의 ‘하인’ 전문
시집 「나는 광장으로 모였다」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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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를 하나 가슴에 품고서 키우는 일은 일생의 일이다.
시인은 꽃을 피우기 위해, 하인을 자처한다.
처음엔 꽃과 나가 서로 다른 존재로 거리를 두고 관찰하며
물을 주는 일로 자신의 직무를 규정한다.
한눈 팔고 소홀할 때 꽃은 제대로 피지 못한다.
시인은 키우는 일의 냉철한 질서에 복무할 때 꽃과 나의 거리는 없어지고
물아일체가 된다. 꽃이 나이고 내가 꽃이다.
다시 말하지만, 무엇을 소중하게 키운다는 건 일생의 일이다.
시인에게 즐겨 순응하는 일은 냉철한 질서이자 진실이다.
그래야 시의 꽃이 핀다. 시인이 시가 된. 시가 시인이 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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