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품는 칼, 인생 각설이 송명룡 씨
세상을 품는 칼, 인생 각설이 송명룡 씨
  • 배진숙 기자
  • 승인 2018.01.30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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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감독에서 지천명 다되어 180도 인생역전 전혀 다른 길로
각설이 공연 중인 송명룡 씨
각설이 공연 중인 송명룡 씨

 

인생은 뜻하지 않게 막다른 골목, 우리 앞에 전혀 다른 바다를 펼쳐놓기도 한다. 몇 번 인물들을 만나 생의 이력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느낀 건, 자기 앞에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아무것도 짐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게 인생이 내보이는 비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찾아간 곳은 기장 정관읍 용수리. 차를 타고서 자주 지나치던 곳인데, 구체적인 지번을 쳐도 네비에 위치가 정확하게 잡히지 않았다. 도로에서 사잇길로 들어가 밭을 지나, 길을 꺾어 막다른 곳, 야트막한 언덕 나무를 배경으로 긴 일자식 막사 같은 외딴집이 있었다. 특이한 곳이었다. 도로 하나만 건너면 고층아파트 숲이었다. 지리적으로 여기만 개발을 미루고 방치한 듯한, 혹은 도시개발에 편승하지 않고 어떤 고집이나 자존심으로 남겨진 외딴 섬 같았다.

중절모를 쓰고서 환한 미소로 맞아준 사람이 송명룡(71) 씨다. 연예인, 각설이 대해 갖고 있던 머릿속 그림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중후했다. 마당 정면 나무 사이에 ‘문재인대통령 기장군지킴이’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곧이어 곧은 자세와 눈빛의 장수수 박사와도 인사를 나눴다.

사무실 전면 창으로 오후의 빛살이 쏟아졌다. 앉은뱅이 탁자에서 장박사, 후배, 송명룡 선생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로 오늘의 주인공인 송 선생의 얘기를 듣는 쪽이었다. 송 선생은 ‘찾아가는 예술무대’를 이끌며 예명 ‘가파치’ 로 더 알려져 있다. 그는 봉사예술단을 꾸려 매월 3번째 목요일마다 기장의 요양원, 복지시설 같은 데서 무료공연도 펼친다. 어쩌다가 품바각설이를 하게 되었냐고 물었다. 그는 스스로를 ‘잡놈’이라고 서슴없이 말했다.

‘타고난 잡놈’이라! 23년 전에 각설이로 접어들며 완전히 다른 길로 갔다고 했다. 그전에는 축구감독이었다. 장안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못하는 운동이 없었던 운동천재로 특히 축구에 귀재를 보였다. 1969년, 군대에 갔다 와서 울산시 팀의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그러다 좌천 장안중학교의 초대 축구감독으로 발탁되어 축구인재 양성에 힘을 쏟다 기장중학교 감독직을 끝으로 축구와는 공식적으로 인연을 끝맺는다. 그 시기 가정사와 여러 힘든 일이 겹쳐 그를 고통에 빠트린다. 그러다 조카 박대박(박세용) 씨로부터 품바각설이의 세계에 입문하며 그의 인생이 전환기를 맞는다. 그는 “조카가 대한민국에서 제일 1등으로 섹소폰을 잘 부는 사람”이라며, 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는 사람들 앞에서 예술인의 끼를 유감없이 펼치며 자신에게 숨겨졌던 또 다른 제2의 자아를 발견하고, 이것이 자기 천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가 각설이로 살겠다고 표명하자, 주위에서는 다들, 제정신이 아니라고 말렸다. 그 천한 짓거리를 왜 하느냐며 미친놈 취급하며 가족들도 외면했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 하나를 절단하는 행위까지 하며 쉽게 결정한 일이 아님을 보여준다. (와! 대단. 그런데 좀 독하다. 진짜 그의 검지 한 마디가 뭉툭하게 잘려 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눈썹이 예사롭지 않다. 호랑이눈썹(눈썹털이 길고 끝이 위로 길게 뻗쳐 있는 모양)으로 서릿발 같은 기질이 보인다.

처음 입문할 때는 각설이가 얼마 없었는데 지금은 전국에 1,700여 명이 된다며, 계통 없이 난립해 있는데 정통파는 소수라고 했다. (이건 문화재 등록도 안 되고, 아직도 못 배우고, 없는 사람이 하는 것으로 천시 받고 있다.) 15년 전 호시절에는 강릉 단오제 같은 큰 축제에서 하루 천만 원어치 엿을 팔았다며 우리 엿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잠시 대화를 중단하고, 그는 후배한테 남아 있는 엿이 있으면 가져 오라고 했다. 후배는 일어나서 방에 가더니, 이것밖에 없다며 엿 조각이 담긴 작은 포장용기를 내밀었다. 그는 엿 한 번 먹어보라며 이 엿은 전라도 전주에서 만든 질금 100프로 무설탕에 호박, 고구마 등을 넣은 건강 엿이라고 했다. 설탕이 들어가면 이빨에 엿이 쩍쩍 달라붙어 틀니가 빠지고 그러는데, 이것은 절대 달라붙지 않고, 회 먹고 탈이 나도 맨엿 3개면 낫는다며 엿 자랑을 했다.

송 선생은 어릴 때 얘기부터 연도 날짜까지 정확하게 막힘없이 풀어놓는데 기억력이 비상하고 재담꾼 각설이답게 청산유수였다.

5명의 누나들 틈바구니에서 외아들 막내로 태어났다. “나는 집안에서 돌연변이다. 운동 신경도, 끼도 아무도 없는데 자기만 유별났다. 4학년 때 마을에 아버지 친구가 있었는데 앞을 못 보는 장님이었다. 아버지 친구가 멧방석을(짚방석) 짜는데 1주일이 걸린다. 심심하니까 어느 날 나를 불러서 책을 읽어달라고 했다. ‘화중옥서(옥중화)’라고 지금은 춘향전이라고 하는데 그걸 내가 옆에서 읽어줬다. 읽다 보니 신이 나서 감정도 넣고 가락을 실어 실감나게 읽어준 거다. 특히 옥중에서 춘향이가 울부짖으며 사설을 할 때는 (울었다.) 그걸 일 년 했더니 저절로 외워져서 나중에는 책을 안 보고 줄줄 읊었다.” (그러니까 그는 어릴 때부터 책 읽어주는 아이로 특출난 재능을 발휘했고, 그것이 잠재되어 있다, 인생의 중반 에 불쑥 송곳처럼 튀어나온 것이다).

그는 어머니가 논에서 모심을 때 흥얼거리던 노랫가락이 기억에 남아(듣고 자라) 양산 모내기소리를 구성지게 한다. 한 소절 들려주는데 겉모습과 달리 넘어가는 소리가 여성적이고 섬세하다.

“해가 졌네~ 양산 땅에 해가 졌네~

해가 지고 저문 날에 골목골목이 연기난다

기장군 지킴이 송명룡 씨(좌), 장수수 박사(가운데), 후배(우)
기장군 지킴이 송명룡 씨(좌), 장수수 박사(가운데), 후배(우)

 

우리님은 어디 가고 연기 낼 줄도 모르는고~ “

그는 양산행상소리도 다 기억하고 잘한다. 보통 상여 앞소리를 회심곡으로 많이 하는데 원래 하는 소리와는 다르다고 했다. 특히 호상일 때 상여 한쪽에 16명씩 양쪽에 32명이, 1명이 상여에 올라가 선소리를 하는데, 33명의 상두꾼이 꽃상여를 메고 행상소리를 하면 장관이라고 했다.( 행상소리, 모내기 소리 다 연출할 줄 아는데 아무도 여기서 날 안 불러주네, 하면서 그는 자조적으로 웃었다.)

묵묵히 마주앉아 이야기를 듣던 장 박사(59)와 이야기 고리가 이어졌다.

‘노인신문’발행인이며 기장군 시 승격추진위원회 위원장이며 현재는 문재인대통령 기장군지킴이로 올 6‧13 지방선거에 기장군수 후보로 출사표를 던졌다. 기장의 현안문제로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기장은 부산의 위성도시가 아니라 독립시로 승격되어야 한다. 정관이 20년 전만 해도 인구가 1500명이었다. 시의 조건이 되려면 인구가 15만 이상이 되어야 하고 읍이 2개 이상이면 되는데, 지금 기장은 16만 인구에 읍이 3개다. 원래의 역사적 뿌리를 지키고 기장이 기장다우려면 부산으로부터 독립해야 하고, 송정, 서생, 진하를 통합해 기장시로 통합해야 한다.” 고 장 박사는 분명히 밝혔다.

송 선생은 장 박사(행정학)와 고향 후배로 기장을 지키려는 그 뜻에 공감한다. “기장에 대한 주인의식을 갖고 지켜가야 하는데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자기 주머니 채울 생각만 한다. 이번 선거는 잘 치러야 한다. 정신이 똑바른 사람이 나와야 한다. 기장을 바로 만들려는 사람이 장 박사다. 후손들에게 좋은 기장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은 똑같다.”그는 힘주어 말했다.

송선생은 축제 따라 전국을 떠돌아다녔다. 강릉 단오제, 남원 춘향제, 진해 군항제, 내장산 단풍 축제양산 유채꽃축제, 삽량축제 등 혼자서도 2시간 이상을 관객들을 끌고 갈 수 있다. 각설이 공연하고 부대끼면서 성격이 순화되었다. 예전에는 차를 타고 가다 도로에 담배꽁초를 버리면 30,40킬로를 추격해서라도 길이 쓰레기통이냐며 호통 쳤을 정도로 성격이 대단했다.

“우리소리, 기장의 전통 소리, 상여 앞소리, 양산모내기소리, 기장의 옛날 문화를 살리는데 최선을 다하고 싶다. 겉모습만 보고 나를 무식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각설이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인생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도덕이다 기본적인 도덕을 지키면 위에는 아래를 사랑하고, 아래는 위를 존경하면서 세상이 더 좋아지지 않겠냐” 며 송 선생은 자신의 철학을 담아 말했다.

맨밑바닥에서 보면 사람이 다 보인다. 그는 바닥에 앉아 있으면 오히려 높이 올라앉을 있을 때보다 더 사람이 잘 보인다고 말한다.

가바치! 그는 세상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맨 아래서 세상을 올려다보며 희롱한다. 그는 그를 필요로 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서 웃음을 주고 즐겁게 해주고 싶다며 그의 바람으로 마무리했다.

 

가바치 송명룡 씨
가바치 송명룡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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