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병륜 칼럼] 응답하라 1979
[신병륜 칼럼] 응답하라 1979
  • 황연경 기자
  • 승인 2018.10.21 05: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병륜
신병륜 논설위원

39년 전 1979년 부마항쟁이 시작된 날이다. 저녁에 민주공원에서 부산의 시민사회단체 원로들과 시장, 구청장, 의원들 그리고 부산대 교수들이 참석하여 기념식이 열렸다.

문정수 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유신철폐, 독재타도를 외친 부마항쟁이 유신독재의 종식의 계기가 되었지만 아직도 진상규명과 국가기념일이 지정 안 된 것이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송기인신부도 진상규명과 제대로 된 평가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창원에서 온 최갑순대표도 유신잔재를 걷어낸 부마항쟁은 부산이 선도했고 창원이 호응을 했다고 하며 2년전 촛불로서 또다른 승리의 역사가 되었다고 했다. 우리도 분단조국에서 평화와 번영의 발걸음을 옮겨야 한다고 했다.

손학규대표는 부산. 마산민주화 역사의 뿌리이며 진상규명과 국가기념일 제정에 노력하겠다고 했다.
오시장은 부마항쟁은 역사적 가치를 세운 날이며 진상규명과 국가기념일지정에 백만인 서명과 새로운 헌법 전문에 부마항쟁이 게재되도록 할 것이라 했다.

마지막으로 민주시민상에 도시생태를 위해 시민위주의 함께하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노력을 하다 우리 곁을 떠난 고 윤일성부산대교수에게 주어졌고 부인은 수상소감에서 남편은 잘 살다 간 사람이라고 하며 울먹였다. 아들이 낭독한 인사말에서 아버지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제자를 만들어 놓고 떠났으며 오늘 받는 상이 하나의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과 의미가 중요하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박종철합창단, 겨레하나합창단, 부산여성회가 하나 되어 합창을 하며 39주년 부마항쟁기념식을 마쳤다.

초딩때인 70년대 초반 한국에서 세계 축구대회가 열렸고 어느새 박통컵 축구대회로 이름이 바뀌었다

79년 10월 18일 경남대 학생들이 시내에서 데모를 크게 했다고 하고 북마산 파출소 유리창들이 많이 박살났다고 들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10여일후 5·16군사쿠데타로 집권한 박통은 자신의 심복이 쏜 총에 맞아 18년간 무소불위의 권력을 내려놓아야만 했다. 부산,마산시민들은 불의에 굴종하기 보다는 떨쳐 일어났다. 그런 정신들이 모여 반듯한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초석이 된 것이다. 그 역사를 가슴깊이 간직하여 더 반듯한 나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박정희 정권의 유신독재에 저항한 시민운동인 부마민주항쟁 39주년 기념식이 18일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3·15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부마항쟁을 표현한 샌드아트(사진=신병륜 페이스북)
부마항쟁을 표현한 샌드아트(사진=신병륜 페이스북)
유신정권을 표현한 샌드아트(사진=신병륜 페이스북)
유신정권을 표현한 샌드아트(사진=신병륜 페이스북)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