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활동 적합 지형·환경…곳곳에 군 관련 지명 남아있어
가야 방어 위한 '마두성', 지금의 '성고개' 가능성 있어
양산 고대사 연구 첫걸음…고고학적 조사 뒷받침 돼야

[양산일보=권환흠 기자] 삼국사기 거도열전에 이런 기록이 나온다.
"탈해 이사금을 섬기던 거도(居道)가 마숙(馬叔)이라는 말달리기 놀이를 빙자하여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을 멸하였다"
거도는 매년 한 번씩 장토(張吐)의 들판에서 병사들로 하여금 말을 타고 달리면서 놀게 하는 마속놀이를 했는데, 이를 보고 의심하지 않은 두 국가를 기습해 멸망시켰다는 내용이다.
또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에는 파사 이사금이 백제와 가야를 대비해 '가소성'과 '마두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우시산국은 경북 영해 또는 울산 울주 지역을 기반으로 했던 고대국가이고, 거칠산국은 가야의 소국으로 부산 동래에 있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는 신라와 가야가 울산·언양·양산·동래 지방에 대한 쟁탈전을 벌이던 시기였다.
두 고대국가를 병탄한 신라의 거도 장군이 마숙놀이를 했다고 전해지는 장토의 들판, 주둔곡. 그리고 파사 이사금이 가야를 막기 위해 쌓았다는 마두성.
이곳의 현재 위치가 어쩌면 양산 동면 여락리가 아닐까. 이러한 의문을 풀기 위해 양산문화원 향토사연구소가 지난 5월 12일부터 약 6개월간 김용규 향토사연구소 소장을 조사단장으로 7명의 조사단원과 함께 여락리 산지마을과 남락마을 일대를 기초조사했고, 지난 5일 그동안의 활동을 발표하는 자리를 가졌다.
조사단은 뚜렷한 단서도 없고 흔적도 없는 상황에서 문헌에 남은 실낱 같은 실마리에 기대어 조사 활동을 시작했다. 이들이 여락리에 주목한 이유는 고대국가와 지리적으로 가깝다는 점, 그리고 군(軍)과 관련된 지명과 군사활동에 적합한 지형, 곳곳에 남아있던 성곽으로 추정되는 흔적이다.
산지마을 남쪽 농로를 따라가면 분지지형이 나오는데 왼쪽 분지를 '중농골', 오른쪽 분지를 '선두골'이라 한다. 중농골에서 100여 미터 아래 내려가면 '군지골'이 나오고, 군지골에서 서쪽 산등성이를 타고 가면 남락마을 뒷산이 나오는데 이를 '성고개'라 부른다. 그리고 성고개 8부 능선에 자리잡은 한 농원의 지명이 '성채'다.
이 지명들을 실마리 삼아 조사단을 산지마을과 남락마을 주민들의 협조를 얻어 구전되어온 이야기를 수집하고 현장답사를 통해 단서를 찾아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추상적이지만 여러 정황으로 보아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것.
조사단은 마속놀이를 했던 '주둔곡'이 지금의 '중농골'이고, '마두성'이 지금의 '성고개' 또는 '성채'로 추정했다.
중농골은 급경사의 산자락에 위치한 3단 분지형으로 자연지형이 성(城)의 형태로 형성되어 있어, 적을 방어하기에도 용이하고, 식수와 식량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자연환경이 갖추어져 있었던 점으로 미루어 군사훈련지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조사단에 함께 참여한 황구 기장 향토사연구소장은 "중농골이 해발은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방어를 할 수 있는 지형지물이 잘 형성되어 밖에서 안을 볼 수 없고, 비탈이 아주 협소하고 경사가 심해 접근하기 어려운 입지적 조건을 갖춰 쉽게 함락할 수 없는 천혜의 요새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곳이 군사적으로 사용된 것은 '군지골'의 지명 유래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군지골'은 임진왜란 때 송상현 부사와 양산의 조영규 군수가 전사하면서 따르던 병사들이 울산의 병사들과 함께 숨어든 것에서 유래한 지명이다.
성고개 또는 성채로 전해오는 곳의 성벽 잔해나 축성된 흔적은 매몰됐거나 멸실되어 아직 마두성인지 여부는 파악하지 못했지만, 만약 성고개가 마두성이라고 한다면 양산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성이 될 수 있다.
조사단은 이번 기초조사활동이 뚜렷한 성과는 없지만 양산 고대사 연구의 출발점으로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평이다. 김용규 조사단장은 "계획 당시에는 막막하고 막연했지만 지역주민의 협조를 받아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산에 올라 현장답사를 하면서 고대사의 현장에 와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황구 소장은 "추상적이지만 주민참여조사로 지역향토사 정립에 크게 기여했다"면서 "앞으로 지명 재확인 및 고고학적 조사가 필요하다. 더 많은 자료 확보를 통해 고대국가가 새롭게 재조명 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조사활동 내용에 대해 추상같은 지적사항을 아끼지 않았던 이상도 울주 향토사연구소장은 "무척 중요한 일을 했고, 학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라 본다"면서 "거도가 어떤 경위로 우시산국과 거칠산국을 복속했는지 규명하는데 큰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박정수 양산문화원장은 "첩첩산중 오지를 조사하기 위한 조사단은 남다른 향토문화에 대한 애착심을 가지고 도전을 했다"면서 "뚜렷한 결과물은 없다지만 오랜 과거의 지역사를 밝히고자 하는 의욕으로 노력했던 발걸음이 더욱 값지다"고 격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