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사직단 112년 만에 찾아, 교동 93번지 화성R&A 공장터
양산사직단 112년 만에 찾아, 교동 93번지 화성R&A 공장터
  • 김봉우 기자
  • 승인 2020.03.11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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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신-곡물신에 제사 모시던 제단, 양산읍성 외부 관아 서쪽...산업화 과정 사라져
1872년 지방지에 그려진 양산 사직단(사진제공=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1872년 지방지에 그려진 양산 사직단(사진제공=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가야일보 창원지사=김봉우 기자] 종묘와 사직을 논한다고 하는 양산 사직단이 사라진 지 112년 만에 위치를 찾았다.

11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에 따르면 조현근 사무국장이 전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양산 사직단의 위치를 찾았다고 밝혔다. 조현근 사무국장에 의하면 양산 사직단은 교동 93번지로 현재 화성R&A 공장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일제시대 조선총독부가 1912년 조사한 양산 지적도에 사직단을 나타내는 사(社)와 함께 단(壇)이 표시되어 있으며 지목은 사(社)로 적혀있었다.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사를 지내려고 단을 쌓은 공간으로 양산읍성 외부에 있었다. 1872년 지방지를 보면 양산향교와 가까운 곳에 그려져 있는 것이 보인다.

1954년 항공지도를 통해 본 양산 사직단(사진제공=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1954년 항공지도를 통해 본 양산 사직단(사진제공=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도내에서는 산청 사직단과 창녕 사직단 등이 복원되었고 진주와 고성의 경우 복원할 계획하고 있다. 산청, 창녕, 진주, 고성 사직단은 경상남도 문화재보호 조례 제11조에 의거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산청, 창녕, 진주, 고성 이외에 거제, 곤양, 밀양의 사직단은 찾았으며 창원 사직단은 올해 지표조사가 진행될 예정이다. 이외 산청 사직단은 지번이 나왔으며 사천 사직단은 양산 사직단과 같이 지번이 나왔지만, 택지지구개발이 된 상태라 흔적을 찾지 못하고 공사를 진행했다.

조현근 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창원과 사천 사직단을 찾는 것을 비롯하여 다른 지역의 사직단을 찾고 있는데 이번에 양산 사직단의 위치를 찾았으나 1980~90년대 공장을 지으면서 양산 사직단이 사라져서 안타깝게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1912년 조선총독부 발행 지적도에 그려진 양산 사직단(사진제공=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1912년 조선총독부 발행 지적도에 그려진 양산 사직단(사진제공=경남시민문화네트워크)

양산 사직단은 1982년 항공사진에도 그 흔적을 알 수 있으나 이후 화성R&A공장을 증설하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1982년 항공사진에는 야산이 보이지만 1990년대 사진에는 야산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 봐서는 1990년 초반에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조현근 국장은 “향토사적으로 대단한 발견이다. 사직단은 중요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에 1872년 지방지에도 크게 그려 놓았다. 또한, 지역별로 다 있었으며 중요 제례시설이었다. 1908년 일제에 의해 사라졌다가 다시 흔적을 찾을 수 있어서 기쁜 것 같다. 다만 지번만 나왔고 그 자리에 공장이 들어섬으로 영원히 양산시민 품으로 돌아올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라며 늦게 찾은 것을 아쉬워했다.

사직단은 2월과 8월 및 동지와 제석에 제사를 지냈다. 이외에 나라에 큰일이 있을 때의 제례와 가뭄에 비를 비는 기우제와 풍년을 비는 기곡제 등을 사직단에서 제사를 지냈다. 또한, 각 지방에도 관아의 서쪽에 사직단을 세우고 제사 지내 국태민안과 풍년을 빌게 했는데 양산의 경우 관아가 있었던 북부동에서 보면 서쪽에 양산 사직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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