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효 칼럼] 산재사고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안수효 칼럼] 산재사고 줄어들지 않는 이유가 있다
  • 안수효 논설위원
  • 승인 2020.09.21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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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수효 논설위원(안전전문가)

2020년 4월 27일 노동부는 '2019년 산업재해 발생 현황'을 발표하면서,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자 수는 2020명으로 이 중 사고 사망자는 855명, 질병 사망자는 1165명이었다. 2018년에 비하면 전체 산재 사망자 수가 122명으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발표했다.

특히 건설업 사망자 수가 485명에서 428명으로 57명이나 감소했다. 사망사고가 감소하긴 했지만, 내용적으로는 반길 수 만 없는 일이다. 건설업에서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건설업의 사고사망 만 인율 (만 명당 일어나는 사망자 수)은 1.65에서 1.72로 오히려 늘었다. 건설업 사고사망자 숫자가 줄어든 것은 산재예방정책이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 아니라, 2019년 건설 경기가 나빴기 때문으로 해석하고 있다.

2018년 건설업 사고사망자 수는 20여 명 감소했지만, 사고사망 만인 율은 줄어들지 않았다. 각종사고 사망자 지표에서 해마다 가장 높게 나타나는 것이 교통사고다. 2019년도 교통사고 사망자는 3,349명 다음으로 높게 나타나는 사망자는 바로 산재 사고다.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9월20일 기준으로 383명 이라면 산재사고 사망자 수가 얼마나 높은지를 가늠하게 한다.

한국이 사회, 경제, 문화등 모든 지표에서 비교 대상이기도 하고 롤 모델로 삼고 있는 OECD 35개 가맹국가 가운데 창피한 것 가운데 몇 개가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곳이 바로 산재 사망률이다.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률은 1위(23년 동안 21번)다. 이 정도라면 합리적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법에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유추해 볼 수 있고, 법만으로는 안 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우리나라는 1994년 이후 23년 동안 21번 OECD 산업재해 사망률 1위국이라는 불명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매일 2.34명의 김용균(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다 사망함)이 있다. 사고사 대부분이 추락, 끼임과 같은 재래식 사고임을 생각하면 막을 수 있는 '인재'가 계속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왜 대한민국에서는 산재사고가 줄어들지 않고 늘어나는 것일 까? 일하는 노동자들의 안전의식이 부족하고,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관행적으로 일하는 습관이 문제라는 지적도 없지는 않다. 하지만 이것으로 1년에 2,000명이 넘게 죽는 산재사고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어딘지 모르게 부족함이 너무 많다. 노동자의 과실이라기보다는 사용자들의 인명천시에서 비롯된 전 근대적인 사고방식이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이것은 객관적인 수치가 잘 증명해 주고 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의 재범률은 무려 97% 다. 대검찰청의 범죄통계 분석((2007~2017년)을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전과 1범이 471명, 전과 2범이 300명, 전과 9범도 105명이나 됐다. 같은 범죄자가 계속해서 같은 범죄를 저지른다는 것인데, 이 범죄의 이름은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이다. 재범률이 97% 수준이라면 법은 있으나 마나 한 수준임에 틀림없다. 법 자체를 두려워하거나 시정하겠다는 의사가 재범률 통계치를 보면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처벌 수위가 낮기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설자리를 잃은 것이고, 기업들은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법 위반을 반복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으로는 산업재해를 일으키는 범죄를 제대로 처벌할 수도, 예방할 수도 없다고 인식이 지배적이다.

2008년 40명이 희생된 이천 코리아2000 냉동창고 화재, 2020년 4월 38명이 숨진 이천 한익스프레스 물류창고 화재, 2020년 7월 용인에서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로 5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모두가 지하에서 발생한 화재였다. 지하 화재의 공통점은 환기가 어렵고, 불이 붙기 쉬운 값싼 우레탄폼 등을 내부 마감재로 사용하면서 대형 참사로 이어진 것이다. 위험성을 고려한 것이 아니라 경비 절감에 중점을 둔 건축이 가져온 참사였다.

2006년 최악의 살인기업 선정으로 시작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운동은 10여 년 동안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으나, 2018년 김용균씨 사망사고를 계기로 관심이 모아지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법이기는 하지만 좋은 선례가 있기도 하다. 영국에서는 2007년에 ‘기업의 과실치사 및 살인법’을 제정하여 기업이 부주의로 노동자가 숨지게 하면 이를 무거운 범죄로 보고 상한 없는 벌금을 부과하도록 하는 강력한 규제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재해사망률이 0.4명으로 크게 줄어들어 우리나라의 산재 사망률의 25분의 1로 낮아졌다고 한다. 범죄행위에 대한 강한처벌이 반드시 범죄율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영국의 경우만 해도 충분한 효과를 나타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산재사고로 인한 처벌수위가 과태료보다 약하다면 어느 누구도 산재예방에 예산을 투입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의 경우 기업에서는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시설투자를 하지 않고 산업재해 예방 비용보다 산업재해 발생이후 처리 비용이 더 적게 들어가기 때문에 안전사고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산재의 책임은 기업과 최고경영자에게 확실한 책임을 묻지 않게 되면 공염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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