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만 "흙수저에서 '살기좋은 부산' 경제시장 도전" 화제
이경만 "흙수저에서 '살기좋은 부산' 경제시장 도전" 화제
  • 신동열 기자
  • 승인 2021.01.06 0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정고시 출신 첫 동장, 한국공정거래평가원장ㆍ아시아비즈니스동맹 의장
"통합적, 실행적 경제전문가...50개 과제 공약, 아시아의 중심도시 부산 조성"
이경만 한국공정거래평가원장(사진제공=Man캠프)

[가야일보=신동열 기자] "(고입) 연합고사 낙방하고 재수 후, 농고 졸업한 하동의 대목수 아들이 행정고시 합격, 센텀시티 개발, 공정거래위원회와 청와대 거쳐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한국정책센터 근무, 불공정거래로 어려움을 당한 중소기업을 돕는 창업과 사업의 경험으로 부산경제를 되살리겠습니다"

오는 4월 7일 실시하는 부산광역시장 보궐선거를 90여일 앞두고 다양한 출마자들이 저마다의 공약을 발표하며 덩내 경선을 통과하기 위해 열전을 펼치는 가운데, 이색 경력으로 주목을 맏는 후보가 나왔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첫 동장을 역임해 화제를 모았던 이경만(55) 한국공정거래평가원장이 출사표를 던져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이경만 원장은 부산시 근무를 거쳐 대통령 비서실 근무까지 승승장구하던 공직생활을 20년 만에 마감하고, 5년 전부터 중소기업들의 공정거래 관련 분야를 지원하는 공정거래평가원과 경제 관련 정보들을 서비스하는 지식비타민주식회사 경영과 함께 아시아비즈니스동맹 의장으로 국제적으로 활동하며 재2의 인생을 송공적으로 개척해온 데 이어, 이번에는 부산 경제를 살리겠다는 포부로 출마의사를 밝혔다.

분야별로 이경만 원장의 솔직한 답변을 들어보자.

<흙수저로 태어나 머슴생활, 가난에 맞섰던 어린 시절>

저는 1965년 경남 하동 출생으로 가난한 목수의 7남매 중 여섯 번째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주식은 늘 꽁보리밥이었습니다. 소작농, 누에 치기, 겨울철 냇가의 자갈 모아 팔기로 억척스럽게 칠 남매를 공부시킨 어머님 밑에서 자랐습니다. 중학교 때까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몰랐습니다. 들판의 잡초와 냇가의 자갈처럼 자랐습니다. 진주권 고교 입학의 연합고사에서 좌절을 겪어 보았습니다. 그 후 외갓집에서 머슴살이했습니다. 재수생 신분으로 소 마구간의 거름을 져 나르며 영어단어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때서야 철이 들었습니다.

<시골 농고에서 부산대학교로, 행정고시 도전>

졸업하면 면서기라도 할 수 있다는 어머님의 권유로 고향의 진교 농고에 입학했습니다. 공부보다는 봄에 모내기, 가을에 벼 베기 등 면학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주말에는 소와 쟁기로 논밭을 갈았고, 주중에는 독하게 공부해서 1등을 계속 했고, 부산대학 입학, 후에는 서울대 행정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졸업 후 제대하고 행정고시에 도전했습니다. 방법을 몰라서 시행착오를 겪었습니다, 정신무장을 위해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하동까지 무일푼으로 걸어가기도 했습니다. 1994년, 드디어 행시 38회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공부를 함께 했던 당시의 인맥과 고시 동기들은 현재 각 부처, 국회 등에서 실, 국장, 수석 등으로 있고, 지속적으로 교류하고 있는 저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동사무소에서 부산시청, 공정거래위원회를 거쳐 청와대까지〉

1995년, 공무원 연수 후 부산시청을 지원했습니다. 시장을 하려면 밑바닥부터 알아야 하기에 동사무소 근무를 자원했습니다. 금정구청에서 청소와 보건소 과장, 동장을 하면서 행정의 뿌리를 알았습니다. 시청에서는 센텀시티 개발, IT, 국제교류 사업을 맡아 부산의 미래를 설계했습니다. 그때 부산기업을 돕기 위해 2001년부터 기업성공 사례인 지식비타민을 만들어 이메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20년을 계속하고 있고, 4만여 명에 보내고 있습니다. 저의 소중한 지적이고 전략적인 자산입니다.

부산 근무 7년 동안 행정의 본질은 경제임을 깨닫고, 2003년에는 경제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로 옮겼습니다. 여기서 불공정거래의 산업구조와 폐해를 확인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고, 이것이 바탕이 되어 청와대까지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청와대에서는 국가경쟁력강화 정책을 맡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데 진력했습니다. 이 경험은 경제문제에 대한 통찰력과 전문성을 깊이 있게 해 주었습니다. 청와대에는 시골 농고와 동사무소 출신의 흙수저는 저밖에 없었습니다.

<OECD 한국센터에서 확인한 우리나라 경제의 돌파구, 아시아>

한편 2009년에 세계의 중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Howrey 로펌에서 직무연수로 18개월을 보내며 선진국의 공정거래 체계를 연구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덧붙여 2003년에 OECD 한국센터 본부장으로 파견을 갔습니다. 이곳은 선진국 경제 정책을 아시아에 가르칩니다. 아시아를 다니며 한국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와 진출 가능성에 눈을 떴습니다. 제가 맡은 경쟁본부는 지난 10년 동안 1,400명의 경제관료들을 훈련했습니다. 그들 중 100명 이상의 장·차관이 배출되었습니다.

〈20년의 공직을 그만두고, 창업 전선에 뛰어들기〉

2015년에는 뜻한 바 있어 국민권익위원회 국장을 끝으로 공직 20년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대형로펌 취업보다는 불공정거래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기업 도우려고 한국공정거래평가원을 창업했습니다. 지난 6년간 수많은 중소기업을 도왔습니다. 특히 중소기업이 많은 부산경제의 문제와 해결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가장 가슴 아픈 것은 지역경제 침체로 취직할 곳이 없어 청년들이 부산을 떠나는 현실이었습니다. 이런 현실에 참담함과 분노를 느낍니다.

<17개 국가의 아시아비즈니스동맹 창립, 의장으로서 활동>

2018년에 이들을 기반으로 17개 국가로 구성된 아시아비즈니스 동맹(ABA:Asia Business Alliance)을 창립하고, 제가 의장으로 취임했습니다. 2019년에는 인도네시아, 베트남에 지부가 출범하였고, 우리 기업들과 자카르타 등에서 비즈니스 매칭을 시켰습니다. 향후 이 인맥들은 부산기업들이 아시아 시장 진출 시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앞으로 아시아 17개국은 부산의 경제 파트너가 되어 비즈니스 기회를 많이 제공하게 될 것입니다. 다보스포럼을 능가하는 힘을 가질 것입니다.

<25년간 축적된 행정-경제 전문성과 사업 경험, 부산경제 재건에 올인>

1996년, 즉 25년 전의 부산시장에 대한 꿈이 현실을 보자 깨어났습니다. 동사무소부터 청와대까지의 행정과 정무 능력, 국내외 좋은 기업인 인맥, 사업 경험을 통한 비즈니스 친화적 마인드, 글로벌 감각으로 부산을 다시 잘사는 도시로 만들겠습니다. 대학 4년과 공무원 7년, 젊은 날을 다 보낸 부산을 재건하겠습니다.

이경만 원장은 "10대 분야 50개 과제로 아시아의 중심도시 부산을 만들겠다"며 "가덕신공항 조기 오픈, 김해공항 부근 등 3천만평에 드론승용차 공단 조성, 2030엑스포 유치 및 스타올림픽 창설, 드론교통망 구축 및 세계수출, 아시아청년창업밸리 조성, 아시아시장 청년개척단 운영, 육아의 정부책임제(7세 이하 월 70만원 지급), 시니어의 글로벌 창업 천국, 아시아유스리더스클럽 등으로 아시아의 중심도시, 부산으로 만들겠다"고 공약했다.

이 원장은 "통합적이고 실행적 경제전문가에 기회를 주십시오. 구글 등 글로벌 기업이 몰려 오게 할 것"이라며 "20년 동안 지식비타민을 받아본 기업인 등 4만여 명이 '이경만은 해낸다'”는 약속의 증인들"이라며 지지를 호소했다.

이경만 원장은 오는 7일 오전 부산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부산시장 보선 출마선언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