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효 칼럼] 아득하게 먼 횡단보도에서!
[안수효 칼럼] 아득하게 먼 횡단보도에서!
  • 안수효 논설위원
  • 승인 2021.12.22 13: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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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약자를 위한 횡단보도
안수효 논설위원 (안전전문가)

걷는 게 쉽지 않은 어르신들이 아슬아슬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자주 볼 수 있다. 초록색 불은 꺼지고 빨간색 불이 들어 왔는데도 숨 가쁘게 걸어가는 고령자를 자주 목격한다. 차안에서 이를 지켜보는 운전자들도 가슴이 조마조마 한데, 마음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는 노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신호등의 초록색불 유지시간은 통상 '보행 진입 시간'과 '횡단보도 보행 시간'으로 나누어진다. 보행 진입 시간은 사람이 횡단보도 앞에 도달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으로, 일괄적으로 7초 주어진다. 횡단보도 보행 시간은 모든 보행자가 직접 횡단보도를 건너는 시간을 말한다.

신호등 시간 주기는, 보행 진입시간 7초 + 횡단보도 길이(m)라는 공식을 바탕으로 계산 한 것이다. 일반적인 보행속도를 기준으로 1초에 1m를 걷는다고 가정해서 횡단보도 보행시간은 보행자 진입시간에 횡단보도 길이를 더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횡단보도 신호시간을 일률적으로 1m에 1초의 시간을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린이와 노약자, 장애인등의 보행약자의 이용을 높은 지역에서는 1초에 1m가 아니라 0,8m를 이동하는 수준으로 책정한다.

예를 들어 횡단보도의 길이가 32m면, ‘보행 진입시간 7초+횡단보도 신호시간 32초 (32m)’= 39초 동안 횡단보도 초록색 신호가 유지된다. 보행약자인 어린이, 노약자, 장애인의 유동인구가 많거나 보행밀도가 높은 지역의 횡단보도는 ‘1m당 1초’ 보다 완화된 ‘0.8m당 1초’를 기준으로 보행시간이 결정 된다. 따라서 32m 길이 횡단보도 초록색 신호시간은 ‘보행 진입시간 7초+보행약자 신호시간 40초 산정기준(32÷0.8= 40초)’= 47초까지 연장되는 것이다.

문제는 횡단보도를 건너기까지 주어진 시간은 길어야 수십 초다. 이 시간이 유독 짧게 느껴지는 사람들로서는 횡단보도는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 지나가기가 고역이다.

우리나라 고령층의 보행속도가 교통약자의 국제 기준인 0,8m /s 보다 느리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렇게 되면 보행자들은 시간에 쫓길 수밖에 없기에 무단횡단을 한다든지 교통법규를 어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설령 초속 0,8m 속도로 수 십 미터를 일시에 이동한다는 것도 무리다. 젊은층에서는 수 백 미터를 이동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고령층은 숨이 차 오른다.

현행법에 따르면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차량은 보행자가 '통행하고 있을 때'에만 일시정지 하도록 되어 있다. 어린이가 언제 도로로 나올지 모르는 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조차도 사람이 있을 때만 정지하면 된다. 지난 4월 한국교통안전공단이 서울 종로구 무신호 횡단보도 5곳에서 조사한 결과, 보행자가 횡단을 시도한 185회 동안 운전자가 정차한 경우는 단 8회에 그쳤다. 전체 횡단 시도 가운데 4.3%에 불과했다.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는 시간 안에 건너야 한다는 부담감, 지금 당장은 느끼지 못해도 언젠가는 우리에게 다가올 이야기다. 횡단보도는 안전한 보행 환경과, 보행자를 배려하는 운전 습관. 모두 필요한 것이다,

정부는 고령자를 배려한 신호등·횡단보도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새로운 도로설계 지침을 마련했다.

특히 21년 11월 19일부터 창원시가 횡단보도에서 보행신호 시간 동안 횡단하지 못한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동으로 보행 신호 시간이 연장되는 ‘보행 신호 자동연장시스템’을 시범운영 한다. 창원시는 전국 최초로 교통 전문기관인 도로교통공단으로부터 성능 검사 인증을 받은 횡단보도 ‘보행 신호 자동연장시스템’을 창원 용호초등학교 앞에 설치하고 향후 3개월가량 시범운영에 들어간다. 횡단보도에서 보행 신호 시간 동안 횡단을 완료하지 못한 보행자를 인공지능이 자동으로 인지해 5~10초 시간 범위 내에서 보행신호 시간을 자동으로 연장하는 시스템이다.

길을 걷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노인 비율은 매년 늘어나고 있다. 보행약자를 위한 창원시의 선제적인 시스템 도입은 크게 반길 일이다. 또한 횡단보도가 긴 곳에는 보행속도로 인해 보행시간 부족이 예상되는 만큼 횡단보도 중간에는 '중앙보행섬'을 설치하는 것도 적극 검토해 볼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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