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대에서 한반도를 보다”
“임경대에서 한반도를 보다”
  • 천소영 기자
  • 승인 2018.04.29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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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제1봉 중턱에 위치
한반도 지형을 담은 낙동강
최치원 시에 임경대 담겨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임경대는 통일신라시대의 정자로 일명 고운대, 최치원이 놀고 즐기던 곳이라고 해 최공대(崔公臺)라고도 불린다. 고운대라는 이름 또한 고운 최치원이 돌을 직접 쌓아서 만든 뒤 노닐었다 해서 이름 붙여졌다.

물금에서 국도 1022호선을 따라 원동면 화제 방면으로 가다 보면 물금과 원동의 경계 지점 왼편에 육각의 정자를 만날 있다. 이 정자는 양산시에서 관광객들의 쉼터로 만든 것이다. 임경대는 이곳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임경대는 오봉산 중턱 낙동강 서쪽 절벽에 위치 해 있다. 삼랑진에서 양산을 거쳐 하구에 이르는 낙동강은 황산강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왔다. 그래서 임경대에서 오봉산과 어곡 능선을 황산이라고 했다. 고문헌 등에 따르면 경상좌도의 최고 명승지로 신라 4선(영랑·술랑·남랑·안상)이 노닐었던 관동의 사선정에 비길 만한 기상이 있다고 기록돼 있다.

오봉산은 5개의 봉우리가 낙동강 연안의 제 1봉(533m)에서 화제고개 남쪽의 제5봉(449m)까지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이어져 있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 중턱에 위치해 있다. 오봉산 맞은편 북쪽에는 토곡산이 자리잡아 가지산-간월산-신불산-취서산으로 이어오던 영남알프스가 낙동강에 이르러 마지막 오봉산에서 끝맺음을 한다. 산의 남쪽은 양산천을 낀 물금들이고 그 건너편 동쪽에는 금정산이 높이 솟아 있다. 서쪽은 낙동강과 접하고 있으며, 남동쪽은 물금 신도시와 접해있다. 북서쪽으로는 화제평야와 접해있고, 오봉산~작은오봉산~화제고개로 이어지는 능선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등산로다.

이곳의 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돼 조감하기 어렵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그의 시만 전할 뿐이다. 양산8경 중 하나로 최치원의 시에서 그 풍광의 수려함이 입증되기도 한다. 최치원이 관직에서 물러나 전국 명산대천을 찾아다닐 때 양산 황산잔도를 지나 절벽 위에서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보며 시를 짓고 쉬었다고 전해진다.

‘임경대 제영’이란 한시는 최치원의 문집인 ‘고운집 권1’과 우리나라 역대 시문 선집인 ‘동문선 권19’에 ‘황산강 임경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최치원은 임경대의 원경을 읊다가 시선을 외로운 돛배와 아득히 멀어지는 새로 옮김으로써 외로움의 정서를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최치원(857, 문성왕 19~)은 6두품 출신으로 868년(경문왕 8) 12세의 젊은 나이로 빈공과 장원으로 급제해 876년(헌강왕 2)에 표수현위로 임명됐다. 이때 군무(軍務)에 종사하면서 지은 글들이 뒤에 『계원필경(桂苑筆耕)』 20권으로 엮였으며, 「격황소서(檄黃巢書)」는 명문(名文)으로 손꼽힌다. 885년 신라로 돌아왔는데, 문장가로서 능력을 인정받기는 했으나 골품제의 한계와 국정의 문란으로 당나라에서 배운 바를 자신의 뜻대로 펴볼 수가 없었다. 당나라에 있을 때나 신라에 돌아와서나 모두 난세를 만나 포부를 마음껏 펼쳐 보지 못하는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 여러 지역을 유람하다 만년에 가족을 이끌고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 들어갔으며 그 뒤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의 사상은 기본적으로 유학에 바탕을 두고 있었으며 스스로 유학자로 자처했다. 그러나 불교에도 깊은 이해를 갖고 있었고, 도교에도 일정한 이해를 지니고 있었다. 한편 문학 방면에서도 큰 업적을 남겼으며 후대에 상당한 추앙을 받았다. 그의 문장은 문사를 아름답게 다듬고 형식미가 정제된 변려문체(騈儷文體)였으며, 시문은 평이근아(平易近雅)했다. 고려의 이규보(李奎報)는 『동국이상국집』에서 『당서(唐書)』 「열전(列傳)」에 그가 입전(立傳)되지 않은 것은 당나라 사람들이 그를 시기한 때문일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안개 낀 봉우리 빽빽하고 강물은 넓어 넘치는데 烟巒簇簇水溶溶

물거울 속 비친 인가는 푸른 봉우리 마주 섰네 鏡裏人家對碧峯

외로운 돛단배 바람 싣고 어딘지 가노니 何處孤帆飽風去

아득히 나는 저 새 날아간 자취 없네 瞥然飛鳥杳無

통일신라시대 대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시에는 낙동강에 비친 산이 꼭 거울 같다고 해 임경대라고 이름 붙여졌다고 한다. 이 시는 주변의 풍경을 읊고 있으면서도 외로운 돛배와 새를 통해 자신의 심경을 내비치고 있다. 최치원이 임경대 제영을 읊은 이후 고려 시대 김극기는 최치원의 시에 차운하였고, 조선시대에는 김순룡, 안효필이 칠언율시를 남겼다.

숲속 산책길을 따라 10여분 걸어 임경대 전망대에 오르면 한반도 지도 모양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오봉산은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촬영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다. 영화 속에서 전지현이 “견우야, 미안해. 나도 어쩔 수 없나봐!”를 외치며 차태현과 이별한 장소가 바로 이곳이다.

다음 달에는 낙동강 낙조와 한반도 지형 형상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감상 전망대가 설치되니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올라가 탁 트인 낙동강 경치를 내려다보는 것은 어떨까. 별도의 주차 요금이나 입장료가 필요하지 않으니 가족, 연인과 함께 드라이브 하는 길에 들리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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