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은 이미 봄이 한창이다. 곳곳에 꽃들이 만개했음을 많은 독자들께서 사진으로 보여주고 계신다. 다만 그늘에서 만나는 찬바람은 여전히 쌀쌀하게 느껴질 정도로 꽃샘추위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우수, 경칩 다 지나고 걸뱅이들이 다 얼어죽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섣부른 환복은 낭패를 부를 수 있음을 유념하면 좋을 일이다.

20일 추분을 앞둔 시절은 여전히 혼돈이다. 법원이 급작스레 어설픈 논리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구속을 취소하고, 대법관인 법원행정처장도 '필요하다'는 상급심 판결을 피하려고 즉시항고를 포기하는 검찰총장의 노골적인 충성행보로 인해 공장이 다시 열기로 가득차고 있어 뜻있는 국민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엄동설한을 노상에서 지새우게 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는 농사철인데도 민심을 어루만지지 못하는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자들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거리를 누비는 한심하고 구시대적인 작태가 이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도대체 국회의원들이 왜 정책을 논의하고, 입법으로 민생을 보듬을 구상들을 내팽개치고 틈만나면 길거리로 몰려가 시정잡배처럼 구느냐는 질타도 이어진다. 장삼이사들이야 불만을 표출하고,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거리와 광장에 모일 수 있다. 그렇다고 의원들까지 낄 자리는 아니라는 지적이다. 공식적인 마이크와 보좌진은 물론, 계엄령으로도 침탈할 수 없는 의사당을 가진 자들이 노상을 거닐며 허송세월이라니...
일각에선 자기들 말대로 '내란'이 4개월째, 100일을 훌쩍 넘었는데도 진압은 커녕, '내란수괴'가 길거리에서 주먹을 쥐고 활짝 웃도록 방치하고 있는 한심하고 무능한 것들에게 어떻게 국군통수권을 맡겨 분단체제를 관리하게 하겠느냐는 탄식도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6일 부산을 찾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시민 160여만명이 서명할 정도로 소멸위기의 부산이 직면한 현안들에 대한 박형준 시장의 절절한 호소에도 국민의힘 서울-부산 시장들간의 이견으로 산업은행 이전이 어려운 것으로 호도하려는 언행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수차례 읍소하다시피 요청해온 면담을, 그것도 시청 방문이 아니라 '상전 노릇' 하듯 가장 먼 강서구 신항으로 불러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일어나' 공분을 사고 말았다.
회동 직후 박 시장은 분노의 항변으로 시민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실제로 시민단체들은 10일 시청 앞에서 규탄대회를 연데 이어 12일 합동 기자회견을 열어 이 대표와 민주당에 대한 성토를 이어갔다. 이 대표가 부산 시민을 자극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지난해 1월 가덕신공항 예정지를 방문한 길에 당한 피습 상황에서 가장 진료를 잘 한다는 부산대학교병원을 두고 불법 논란이 여전한 소방헬기를 이용한 서울 이송으로 불필요한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4개월여만에 시당을 찾은 길에 지역 언론들이 대부분 참여해 산업은행 이전을 위한 소재지 규정 개정과 글로벌 허브도시 특별법 제정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거듭된 요청에도 '입도 벙긋하지 않고, 무관심한 태도로' 걸어나가 분노를 자아냈다.
물론 이 대표는 부산시민들에게 섭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전국에서 172석의 과반수는 물론 야권이 192석으로 압승한 지난해 4월의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산은 오히려 3석이던 민주당 의석이 1석으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한때 6석이던 의석이 17대 1의 처참한 성적에 괘씸한 생각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을에 실시한 금정구청장 보궐선거에서 조국혁신당과의 단일화로 '약간 앞선다'는 여론조사가 나올 정도로 기대를 가졌으나 20% 이상 격차로 참패한데 대한 앙금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뭐가 이쁘다고'라는 말이 돌 정도로 민주당 지도부의 부산에 대한 감정이 좋을 가능성이 낮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부산은 그의 말대로 북극항로의 기점으로 동북아 해상 물동량을 소화할 수 있는 트라이포트이다. 가덕신공항을 조기 완공하고, 철도와 항만을 아우르는 집중 투자가 시급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 수 있다. 2030부산국제박람회 유치가 어떤 이유든 무산된 이후, 부산의 살 길을 열 것으로 기대하는 시민들의 염원이 담긴 것이 특별법이다. '노인과 바다만 있다'는 부산에서 160만여명의 마음을 담은 특별법을 대하는 민주당의 어깃장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지 오래다. 부산 출신 의원의 망발을 비롯한 헛발질로 금정구청장 보선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에 그친 데서도 깨닫지 못하고, '부산 출신이라는 소위원장이 청문회도 열지 않고 궁색한 변명으로 여론악화를 가중시키고 있다'는 규탄의 목소리가 높아진 지 오래다.
여전히 부족한 일부 측근들의 잘못된 보고에 의존해 '피란수도'이자 유엔평화공원이 있는 세계적인 환적항, 제2의 도시 부산에 대한 판단을 계속 그르친다면, 울산과 경남으로 이어지는 동남권 여론에 호응하지 않는다면, 탄핵과 조기 대선 가능성과 선거법 위반 재판 등 일련의 복잡한 정치일정들과 무관하게 이 대표와 민주당의 입지는 날로 줄어들 것이라는 점을 깊이 살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압도적이던 이회창 총재의 두 번의 대선 실패는 물론 수많은 대세론들이 어떻게 무너졌는지는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될 정도임을, 부산의 상심과 분노는 날로 깊어져 왔음을 하루속히 인지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부산항에는언제나 돌아올 수 있지만, 떠나간 민심의 배는 쉽게 돌리기 어려운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