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비 그치면
내마음 강나루 기인 언덕에
서러운 풀빛이 짙어오것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다소 뜬금없지만 봄의 노래를 불러봅니다. 그리운 이에게 전하는 외로운 마음이 계절에 따라 다르지는 않겠지요...
사랑하는 이여, 오늘은 어떤 마음으로 지내시는지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돌아갈 수 있는, 다다를 수 있는, 그대를 처음 알게 되던 날들로 함께 가고 싶습니다. 가능한대로, 주시는대로 가슴을 열고 숙명으로 받아들이던, 순수하던 그 시간들로 돌아가 보렵니다.

청년의 가슴에 불을 지르던 날들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습니다. 한 줄로 충분했습니다. 스치듯 다가오는 걸음들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운명임을 그때 바로 알았더라면...
돌아서지 못하고 받아 안은 날들로부터 우리의 고통은 시작되었지요. 무심한 하늘은 무시로 울리고, 번잡한 세상사는 언제나 힘겹게 했지요. 욕망의 자본주의는 철학과 인격이 성숙할 틈을 주지 않았고, 흐르는 세월 속에 지갑과 통장과 계좌로 인생을 채워갔지요...
더스트 인더 윈드...
스무살 풋풋함은 어디로 날아가고, 육십을 코앞에 둔 중년의, 아니 초로의 늙어가는 눈길에도 가을은 변함없이 다가오네요. 아니 멀어져 가는 듯 합니다. 새벽녘 차가운 바람은 올해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려주지요. 따스한 차 한 잔 앞에 두고, 우리의 인연을 돌아봅니다.
작금의 세태는 어떠합니까?
경쟁은 어떠하며, 협력은 언제였으며, 배려는 기억이나 하시는지요...
돌아갈 곳과 헤어질 결심을 여쭈었지요.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시지는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모시러 가는 일도 이젠 힘겨워질 수 있으니까요, 다정한 형과 철없는 후배로서의 길도 마무리해야 할 수도 있겠지만, 설령 그러더라도,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하더라도, 그래도 우리는 그러지 않았으면 하고 바래봅니다.
함께 세상을 향해 나아가던 걸음들을 기억하시고, 바로 잡으려던 이상과 꿈을 놓지 마시고, 당당하고 올바른 길로 나오시기를 기도합니다. 존경과 배려는 아니더라도 조그마한 틈 만은 열어주시기를 기대합니다. 어쩔수 없어서 회군은 할 지라도, 끝까지 함께 하려던 마음을 기억하시어 최영 장군과 정몽주의 길 보다는, 손 잡고 마주 앉아 잔 권할 수 있는 다정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움과 헌신의 말로를 무참하게 만들지는 않으시기를 거듭 요청드립니다. 품 넓고 다정하던, 본질을 꿰뚫어 좋아하던 형에서 이제는 내려놓으시고 한 계단 내려오셔서 함께 늙어가기를 바래봅니다. 이제는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마주할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 후생가외와 청출어람보다는 오월동주 일지라도 초록은 동색으로 붉게 물들어 가기를 소망합니다. 제망매가 보다는 등태산의 길을 열어 주시기를...
오늘도 구름 속에 저 달이 있음을, 바람이 지나가는 별들에게 그리움과 추억을 한 사발 걸어둡니다...